귀 막은 선장님 어디로 가십니까
▲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 | ||
최악의 경질 여론과 전문가들의 감독 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측은 ‘감독 교체 불가’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아무런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감독의 교체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니 한 번 더 믿고 기다려 달라는 것.
이제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10개월. 집권 14개월의 본프레레호를 정밀 진단해 본다.
본프레레 감독의 축구국가대표팀은 2004년 6월24일 본프레레 감독 취임 이후 이번 동아시아대회를 포함하여 모두 23번의 A매치를 가졌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는 10승8무5패.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역대 다른 감독들과 비교해서 결코 나쁜 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본프레레호의 성적은 낙제점에 가깝다. 4강 신화를 이룩한 2002년과 비교해 볼 때 공수에 걸쳐 나아진 면을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 성적 부진으로 중도 하차한 쿠엘류 감독과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지난 월드컵 이후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에 본프레레호의 경기내용은 턱없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공격력-뻥축구 부활?
본프레레호 출범 이후 가진 23차례의 A매치에서 대표팀이 성공시킨 득점은 모두 33골(19실점)로 경기당 1.43점의 득점력을 보였다. 이 수치도 결과만 놓고 볼 땐 썩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아시안컵과 월드컵최종예선의 각각 4:0으로 대승을 거둔 쿠웨이트 전 두 경기를 제외하곤 3득점 이상 기록한 다득점 경기를 찾아 볼 수 없다. 더욱이 약팀과 상대한 경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1득점 이하 경기가 전체의 56%(무득점 5경기, 1득점 8경기)나 된다는 것은 현재 대표팀의 저조한 득점력을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빈약한 공격력의 원인은 한국축구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골 결정력 부재’와 ‘세트플레이의 실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본프레레가 감독을 맡은 뒤 벌어진 23경기에서 공격수들이 시도한 슈팅은 무려 3백45회(경기당 15회)나 된다. 3백45회의 슈팅 중 성공한 것이 33골밖에 되지 않으니 슛 성공률은 고작 9%. 10개의 슈팅을 시도해서 1골도 넣지 못했다는 말이다. 더욱이 이번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선 3경기 동안 54번의 슛을 쏘았으나 고작 1골밖에 득점하지 못하는 최악의 득점력을 보이며 ‘뻥축구’가 부활(?)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경기 내내 주도권을 가지고 밀어붙여도 시원스레 이기는 경기를 찾아 볼 수 없는 것도 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격력 때문이다. 이번 동아시아대회에서 단 두 번의 슈팅 중 1골을 성공시킨 중국대표팀과 20번의 슈팅 중에 겨우 1골을 짜낸 한국 대표팀의 득점력. 이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대해 신문선 SBS 해설위원은 “측면에서의 크로스는 부정확하고, 침투패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제대로 된 골찬스를 잡기가 어려운 것” 이라며 기본적인 협력플레이 훈련이 필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세트플레이의 실종’ 또한 득점력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대표팀에서 기록한 33골 중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은 겨우 7골이다. 게다가 7골 중 수비수 맞고 흘러나온 볼을 성공시킨 것이나 직접 프리킥에 의한 골을 제외하고 약속된 플레이에 의해서 성공시킨 것은 3골밖에 안 된다. 특히 올해 펼쳐진 A매치 경기에서 대표팀이 얻은 90개의 코너킥 중 골로 연결된 것은 지난 콜롬비아전에서 김동진의 코너킥 패스를 정경호가 헤딩으로 성공시킨 1골이 전부다. 성공률 1%! 위협적인 세트플레이가 없다 보니 상대방의 수비벽을 뚫고 골을 성공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수비력-구멍 난 그물
대표팀의 문제는 답답한 공격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물론 수비력에 있어서도 23경기에서 총 19실점(경기당 0.82점)을 했으니 수치로 나타난 결과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은 금방 나타난다.
▲ 지난 11일 벌어진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일본에 1 대 0으로 패해 꼴찌를 기록한 대표팀이 고개를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스포츠서울 | ||
잘 막아내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집중력 부족은 현 대표팀의 수비 수준을 잘 나타내준다. 특히 본프레레호의 총 19실점 중 최종 수비선의 패스미스에 의한 실점이 무려 4점이나 되고 자책골 4점(공식기록은 3점)은 큰 문제다. 여기에 상대 수비수를 놓쳐서 실점을 하는 보이지 않는 실수까지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실점이 먹지 않아도 되는 골을 먹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순간적인 집중력 상실은 경험과 조직력 부족 때문이라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동아시아대회에서 스리백을 형성한 김진규(10회)-유경렬(10회)-김한윤(2회)의 수비라인의 경우 세 선수 모두 A매치 출전 경험이 10경기가 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선수들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은 물론 순간적인 판단 실수가 자주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대표팀 선발 수비수 중 A매치 경험이 10경기를 넘는 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유기적인 협력이 불가능하다 보니 미드필드에서의 강한 압박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대방의 패스의 맥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공격의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것이 다반사. 또한 경험 부족으로 시야가 넓지 못하다 보니 최종 수비선에 공격라인으로 직접 찔러주는 패스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칠 수가 없다.
본프레레 감독 역시 “홍명보나 김태영 등 베테랑 수비수들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갖고 수비력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세대교체의 과정으로 봐 달라”는 의견을 밝혀 수비수들의 경험 축적이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본프레레 감독의 세대교체론 또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본프레레호 출범 이후 대표팀을 거쳐 간 선수는 모두 50명이나 된다. 이 중 수비수로 등록된 선수는 15명이지만 본프레레호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진 선수는 김한윤, 김영철 등 6명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곽희주, 김한윤, 오범석 등은 본프레레호 탑승 이후 2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았고, 그나마 경기 후반에만 잠깐 출전하였기에 이 정도로 선수를 판단할 수 있는 지조차 의문스럽다.
골키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운재 외에는 선수를 출전시키지도 않았다. 23회 A매치 중 이운재가 뛰지 않은 경기는 단 2경기.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을 앞두고 김병지와 이운재를 번갈아 기용하며 경쟁관계를 최대한 이용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현재까지 이운재처럼 안정감있는 GK가 없다고는 하지만 차세대 골키퍼로 여겨지는 김영광, 김용대 등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결국 주위의 여론에 선수들을 많이만 뽑아놓았지 제대로 훈련시키거나 경험을 늘리게 하지도 못했다. 유망주들에게 벤치나 지키게 만든 것이 대표팀 수비의 현주소다. 수비 불안과 함께 새내기 발굴에 인색하고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계속 따라다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자신만의 전술적인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본프레레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갑기만하다. 줄기차게 고집하고 있는 3-4-3 포메이션은 지난 일본전에 와서야 3-5-2로 바뀌었을 뿐 상황에 따른 대체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총체적인 부실이 발견되었음에도 대한축구협회는 아직까지도 대표팀 감독 교체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을 이룬 본프레레 감독에게 시간을 더 줘야 한다는 것. 하지만 시간 타령만 하기에는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독일월드컵이 너무 가까이 느껴진다. 이제 부터가 시작이라는 본프레레와 대한축구협회, 독일월드컵을 앞둔 제대로된 로드맵이 필요할 때다.
최혁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