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7만5천원 “그래도 사명감으로 뛴다”
▲ 한국여자축구를 아시아 정상권에 올려놓은 안종관 감독의 일당은 7만5천원에 불과하다. 그는 환경은 어렵지만 운명 같은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평소 비인기 종목이라 일컫는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의 주역들은 물론 사령탑을 맡은 안종관 감독한테도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기자도 그 뜨거움에 편승해 안 감독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면서 평소 취재를 등한시한 데 대한 미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안 감독은 이런 기자의 태도에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종목의 숙명’이라고 해석했다.
인터뷰는 ‘취중토크’로 진행했다. 강남의 한 곱창집에서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독사’가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남자 안종관을 만났다.
빵점 가장=희생
“정말 오랜만에 집에 갔는데 반겨주는 거라곤 먼지밖에 없더라구요.”
동아시아대회가 끝난 다음날 상경한 안종관 감독(INI스틸·39)은 집으로 곧장 향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호주로 떠나고 없는 탓에 쌓인 먼지 털어내고 청소하고 빨래하면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됐다고 한다.
“아내가 대표팀 감독에 전념하라면서 아이들 데리고 친척이 있는 호주로 떠난 거예요. 집에 자주 오지 못하니까 제가 신경쓸까봐 배려한 건데 막상 집에 갔을 때 가족들이 없으니까 무척 서운하더라구요.”
안 감독은 다른 지도자들처럼 자신을 ‘빵점 가장’이라고 평가했다. 3개월 만에 집에 들어간 적도 있단다. 그래서 다시 대표팀 감독을 제의받았을 때 아내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이전 월드컵대표팀 감독 맡고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면서 무척 힘들었거든요. 결국 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이후엔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아예 신경쓸까봐 한국을 떠나버렸으니까 하하.”
조기 은퇴=보약?
안종관 감독은 광운대와 울산현대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다 김호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은 시절 태극마크를 다는 행운도 안았다. 그러나 무릎 부상으로 28세에 은퇴하며 뼈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갈 데는 없고 몸은 아프고 선수로 뛸 수는 없고. 지도자는 해야겠는데 날 불러주는 팀이 없었죠. 그때 INI스틸에서 코치 제의가 왔습니다. 사실 난 여자축구가 있는지조차 몰랐거든요. 여자축구는 본 적도 없었구요. 그런데 이런 거 저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
그러나 여자축구 선수들이 운동하는 걸 지켜보면서 안 감독은 자신의 선택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선수들이 남자 못지 않은 파워와 열성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에서 용기를 얻은 것이다.
결국 코치로 간 지 4년 만에 감독으로 올라서게 됐고 2001년엔 처음으로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01토토컵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전 여자축구에 대해 운명 같은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처음 인연을 맺을 땐 먹고 살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여자축구를 아시아의 정상으로 올려놓는 목표가 가장 크거든요. 물론 동아시아대회에서 우승은 했지만 아직도 우린 중국, 일본, 북한보다 한수 아래입니다. 진정한 승자가 되려면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해요.”
안 감독은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남자대표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지원과 관심들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기로 오래 전에 결심했단다. 그런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 능력을 끌어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려는 게 안 감독의 목표다.
여자팀 감독=정성과 신뢰
여자팀 감독을 맡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
“여기도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거의 비슷해요. 선수와 지도자 사이에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고 대화를 통해 거리감을 좁히려고도 하죠. 물론 여자 특유의 섬세한 부분에 대해 신경써야 하는 건 있어요. 그래도 선수들이 사석에선 절 상당히 편하게 생각해요. 제가 이번에 대회 준비하면서 7kg을 뺐거든요. 선수들이 왜 그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냐고 물어봐서 ‘너희들이랑 같이 나이트 가려고 살 뺀다’고 대답했더니 난리가 났더라구요. 유머가 있어야 선수들한테 인기도 있어요.”
▲ 안종관 감독(왼쪽)과 이영미 기자 | ||
여자 히딩크=안종관?
동아시아대회 우승으로 안 감독은 ‘여자 히딩크 감독’이란 칭찬을 받게 됐다. 그러나 정작 그는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그를 빗대어 표현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죠. 그러나 그분과 내 스타일은 아주 다르거든요. 난 내 방식대로, 내 신념대로 가는 것뿐입니다. 이번에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선수 교체를 3명밖에 할 수 없는 거였어요. 박은선이 부상이라 중간에 교체를 해야 했고 다른 선수들도 부상을 당해 선수 교체를 원활히 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보니 한 선수가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해 내야 했죠. 그래서 새벽부터 오전 오후 세 차례의 훈련을 통해 계속 반복 학습을 시켰어요. 우리 팀에 필요해서 멀티플레이를 한 거지 히딩크 감독을 흉내내려고 멀티플레이 훈련을 한 건 아니었어요.”
본프레레 감독=안타까움
남자대표팀 감독으로 요즘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당연히 안 감독은 대답을 꺼려했다. 그래도 기자가 계속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정말 조심스럽네요. 결론을 내려보면 본프레레 감독도 고민은 컸을 겁니다. 너무 성적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당황스럽기도 할 거예요. 그러나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 부분에선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경기 내용만 놓고 봤을 땐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어요. 다만 네티즌이나 팬들도 좀 더 기다릴 줄 아는 넉넉함도 보여줘야 해요. 그분이 좀 더 자신의 색깔을 낼 수 있도록 더 기회도 줘야 하고. 이젠 본프레레 감독이 자신만의 확실한 철학을 보여줘야 할 시기가 도래한 거죠.”
안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프랑스에 0-5로 졌을 때 토토컵 우승으로 여자축구가 축구팬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도 남자대표팀이 힘든 시기에 여자축구가 우승을 차지해 큰 몫을 하게 됐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 지난 4일 동아시아컵 축구대회에서 중국팀에 승리를 거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경기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안종관 감독은 진정한 아시아 최강이 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축구 지도는 입이 아닌 가슴으로 해야 돼요. 이번에 중국을 이기고 15년 만에 북한을 깨니까 어떤 사람은 운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난 우리 선수들의 노력과 철저한 준비로 인해 우승컵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슴으로 지도한 걸 선수들이 가슴으로 받아준 거나 마찬가지예요. 연습 상대가 없어 훈련을 제대로 못할 때도 있었어요. 남자 중학팀에서도 여자대표팀이랑 게임을 뛰려하질 않았으니까. 지금은 이제 남자 중학팀이랑 게임이 가능해요. 그쪽에서도 여자팀을 무시하지 않고. 앞으로 더 끌어올려야죠. 남자 성인팀과 맞먹을 수 있게끔.”
안 감독은 여자축구팀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꿈이 있다. 2003년 미국월드컵 본선 무대에 출전을 한 터라 월드컵보다 아시아지역 티켓 수가 한 장 더 적은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해 세계대회에 또 다시 한국여자축구의 위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야망이다.
“아시아에 네 마리 ‘용’이 있잖아요. 중국, 북한, 일본, 한국인데 이중에서 두 팀만 올림픽 티켓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두 마리는 죽어야 해요. 제가 그 역사를 쓰고 싶어요. 기회가 주어질진 모르겠지만 대표팀 감독으로 있는 동안엔 반드시 이뤄내고 싶고, 이뤄낼 수 있는 자신도 있어요.”
안 감독은 술자리 끝에 언젠가 남자 프로팀의 감독 제의를 거절한 적이 있었다고 실토한다. 자신과 함께 한 시간이 아름답다고 표현한 여자선수들을 떠날 수 없었고 여자축구가 아직은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상태라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인터뷰를 정리하는 중에 동석했던 안 감독의 지인이 기자한테 이렇게 물어본다.
“이 기자님, 대표팀 감독하면 얼마나 받는 줄 아세요? 안 감독은 일당으로 받아요. 하루에 7만5천원씩 계산해서.”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일당 7만5천원을 받고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이 믿어지질 않았다. 안 감독은 지인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며 서둘러 분위기를 전환시키려 애썼지만 7만5천원이란 숫자는 기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순간 본프레레 감독의 월급이 궁금해졌다. 사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7만5천원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