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었다는 영화 <동주>를 보고 와서 동생의 전화가 길다. 국민시인 윤동주는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그렇게 세상을 떴다.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윤동주의 고백이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를 갖는 것 같지 않은지. 그의 시 ‘또 다른 고향’은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로 시작한다. 그가 얼마나 생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 하나를 닦고 또 닦은 것은 그런 무게 속에서였다. ‘참회록’에서 그는 고백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그것은 길지는 않았으나 가볍지 않았던 그의 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을 갖는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시 ‘자화상’을 사랑한다. 어렸을 적 할머니네 집에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을 들여다보면 우물 속에 하늘이 있고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있고 그리고 내가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메아리랑 놀았는데, 윤동주는 거기서 ‘자화상’을 그린 것이었다.
“우물 속에는…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나’를 미워하고 가여워하고 그리워하며 ‘나’를 찾아가는 내향적인 젊음이 누구보다도 인간적이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에서 그는 그렇게 허무하게, 아프게, 안타깝게 세상을 떠야 했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해서 ‘십자가’를 썼던 것이 아닐는지.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그를 ‘저항시인’이라 배웠지만 그는 스스로 저항시인이라고 믿은 것 같지 않고, 시로써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낸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가 저항적으로 읽히는 것은 별을 노래하지 않는 세상,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세상, 하인으로, 하녀로 부려먹느라 주인의 길을 무엇인지 성찰하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 때문 같다. 간직하고 싶다. ‘서시’의 저 대목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