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한 남편 이름으로 12억 기부…“사회환원으로 가슴 맺힌 한 풀어”
사진= 박수년 할머님이 장학금 기탁을 위해 해지한 예금통장(대구 수성구청 제공)
[대구=일요신문] 김태원 기자 = 평생 어렵게 모은 재산 12억원을 장학후원금으로 기탁한 80대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 우리들의 마음에 훈훈한 봄바람을 몰고 찾아왔다.
7일 대구 수성구에 따르면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기탁한 할머니는 수성구에서 56년간 살아온 박수년(86)세 할머니다. 할머니는 이날 오전 10시 수성구청을 방문해 재산 12억원을 남편 ‘김만용’의 이름으로 기탁했다.
1931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박수년 할머니는 꽃다운 나이 23살에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의 죽음 이후 시댁인 반야월을 떠난 박 할머니는 대구 신천동으로 나와 혼자만의 고단한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뼈저린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옷 보따리 하나만을 들고 여기저기를 다니며 억척같이 돈을 벌어 고향인 경산에 농사를 지을 토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30세가 넘어서야 수성동에 집을 사서 정착했고, 그것이 수성구와 맺은 첫 인연으로 현재까지 56년간 수성구에 살고 있다.
이렇게 앞만 보고 살아온 6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할머니는 문득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며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 지 고민을 거듭하게 됐다.
고심 끝에 할머니는 꿈에서도 그리워한 남편 ‘김만용’의 이름으로 생전에 사회에 보람되고 뜻 있는 일을 하나 하고 가기로 했다. 올해 초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의 문을 두드린 박수년 할머니는 평생 억척같이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보람으로 승화시켰다.
박수년 할머니는 “어렸을 때 너무나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었지만 평생에 이룬 재산을 이렇게 사회에 다시 돌려줌으로써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라고 말했다. 박 할머니가 기탁한 후원금 12억원은 2013년 수성장학재단 설립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남편 김만용님과 박수년님의 숭고한 삶과 아름다운 용기를 기억하고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도록 범어도서관에 두 분의 이름을 딴 공간을 마련해 널리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로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이사장은 “기탁금을 별도 기금으로 관리하고 박수년 할머니의 뜻에 따라 두 분의 이름으로 ‘김만용·박수년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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