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카트 당신의 능력을 보여줘야해
▲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난달 29일 입국했다. 궁지에 몰린 축구협회는 그의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오른쪽은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 이종현 기자 | ||
실제 이날 아드보카트 감독과 4강 신화의 주역인 핌 베어벡 수석코치, 그리고 두 사람을 보좌할 한국축구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신임 코치 세 사람이 결연한 의지가 담긴 눈빛을 교환한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전해지면서 비난 일색이었던 협회에 대한 여론은 일단 잦아든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르다는 게 축구 관계자들의 일관된 반응. 국정감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안민석, 이광철 의원이 나서 검찰에 협회를 고발까지 할 태세다. 재야 축구계도 협회의 폐쇄적인 구조에 메스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 입국 전날까지만 해도 협회 관계자들의 얼굴은 벼랑 끝에 몰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의 입국과 함께 국내외 언론들이 그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일제히 다루면서 분위기는 한결 나아졌다.
조중연 부회장이 9월27일 국정감사를 통해 쓴소리만 듣고 별다른 항변을 하지 못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이 입국한 이날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조 부회장 대신 기자들에게 국정감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 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이 면책특권이 있다고 하지만 확인도 해보지 않고 의혹을 제기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특히 ‘축구연구소’를 지목하며 “축구 야당으로 불리는 축구연구소가 국회의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고 주장했다.
아드보카트 감독 입국과 이 위원장의 거침없는 항변으로 반전의 발판을 어느 정도 확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국정감사 후폭풍은 협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회의원들과 각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마다 협회는 이례적으로 해명자료를 작성, 외부에 공개하고는 있지만 협회 내부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특히 정몽준 회장이 받은 이미지 손상은 심각하다.
협회 2인자인 조 부회장은 3일간 휴가를 떠나면서 사퇴설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한참 바쁘게 움직여야 할 정 회장도 여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탓에 운신의 폭을 좁힐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일부 협회 관계자들도 어느 때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강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축구협회 직원 A씨는 “국감과
협회 고위 관계자 E씨는 “2002월드컵 때는 애국자로 불렸는데 지금은 조폭처럼 치부된다”며 “무조건 ‘예스’가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는 열린 조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는 또한 “아드보카트 감독이 왔다고 분위기 반전을 노리는 의견도 있는데 아드보카트가 열 명이라고 해도 한번 돌아선 여론은 되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당수 축구지도자들 역시 협회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이다. 프로감독 C씨는 “협회가 폐쇄적이고 몇 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인적쇄신이 필요하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C씨는 특히 정몽준 회장이 2002월드컵이 끝나고 대선에 출마하면서부터 협회는 사조직처럼 비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교 감독인 D씨 역시 “정 회장을 주위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이 밑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협회를 맹렬히 꾸짖었다. 그는 “자기만 옳다는 아집과 독선은 공멸만을 가져올 것”이라며 “요즘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축구계에서 재야 인물로 분류되는 F감독은 “정 회장을 둘러싼 인의 장막은 일부 축구 행정의 선진화를 가져온 이득이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축구인들에게 허탈감을 심어준 것이 사실이다”며 정 회장 측근들의 물갈이를 요구했다. F감독은 “정 회장도 2002월드컵 뒤 물러났어야 모양새가 좋았다. 축구에 정치색을 입힌 다음부터 누가 협회를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처럼 협회에 대한 여론은 여느 때와 달리 강경하다. 더욱이 즉흥적으로 불거진 불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축구협회가 단기적으로 어떠한 묘수를 내더라도 위기를 돌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아드보카트의 행보에 협회가 큰 기대를 거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아드보카트 신임 감독의 첫 무대인 10월12일 이란과의 친선전 이후 땅바닥에 떨어진 축구협회에 대한 여론이 과연 어떤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