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인 텃밭 찢겨...베팅하는 심정이다”
성동을에 출마하는 진수희 새누리당 예비후보 사무실이 들어선 건물. 건물 외벽에 진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우리 후보가 많이 울었다. 금호동과 옥수동 지역민들 때문에….”
지난 9일 진수희 예비후보의 측근은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진 후보가 성동갑에서 18대 국회의원을 했을 당시 금호동과 옥수동의 기반을 많이 닦아 놨다”며 “그런데 선거구 재획정으로 옥수동 금호동이 갑자기 중구로 붙었다. 중구로 가자니 불리하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선거구 재획정으로 기존의 성동갑(금호·옥수·성수·응봉) 중 금호·옥수동은 중구 전체와 합쳐지면서 중구·성동을로 편입됐다. 나머지 성수·응봉동이 중구·성동갑에 붙었다.
진 후보가 제20대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진 지역은 서울 중구·성동갑. 이 지역의 현역 의원은 3명. 중구는 정호준 더민주 의원, 성동갑은 최재천 의원, 성동을은 홍익표 더민주 의원이다. 정 의원은 중구·성동을에 출마했고 최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했다. 홍 의원은 중구·성동갑에 출마했다.
진 후보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금호·옥수동은 제가 수년 동안 공들인 지역이다. 최근 재개발되면서 여당 지지세도 강했다. 하지만 선거구 재획정으로 이곳이 공중분해됐다”며 “중구냐 성동을이냐,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성동을을 지키기 위해 ‘베팅’하는 심정으로 모험을 걸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성동갑 현역 의원을 지낸 진 후보는 선거구 획정 기간 내내 마음고생을 했다.
중구·성동갑의 다른 새누리당 예비후보들 역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18대 총선에서 임종석 후보를 꺾은 뒤,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김동성 후보는 “원래 성동갑과 을 선거구는 인구 상한선을 넘겼기 때문에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지역구가 넓어지면 시간적 여유라도 줬어야 하는데…, 불확실성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기가 막혔다”고 밝혔다. 안성규 후보는 “중구를 다른 곳으로 편입시키는 게 맞았다. 지역주민의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게리멘더링이다”고 보탰다.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의 홍보 현수막이 내걸린 이 후보의 사무실 건물.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비례)은 경기 용인정에 대한 선거구 재획정 문제 때문에 장고를 거듭했다. 용인정은 기존의 을(기흥구)·병(수지구)에서 보정동, 구성동, 마북동, 동백동(이상 기흥구), 죽전 1·2동(수지구)이 떨어져 나와 신설된 지역구다.
2014년 용인을 당협위원장을 맡은 그는 2년 동안 표밭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선거구 재획정의 영향으로 용인을에서 여권 성향이 강한 상현동이 용인병으로 편입됐다. 이 의원에게 유리한 지역의 일부가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용인병)의 지역구로 떨어져 나간 것. 반대로 야당세가 강한 죽전1·2동은 용인정으로 편입됐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선거구 획정으로 제가 활동하던 지역이 다른 몇 개 지역과 합쳐진 다음 둘로 나뉘었다”며 “정든 두 곳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고 밝히며 용인정으로 출마 선언을 했다. 더민주는 이날 이 의원의 상대로 표창원 후보를 전략공천 했다.
지난 9일 <일요신문>과 만난 표창원 후보는 “재획정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유리하다고 해도 야권이 근소한 차이로 우세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용인을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 용인을 지역의 일부가 용인정에 있다. 제가 표 후보를 대적하지 않으면 용인 전체의 선거가 어려워진다”며 “안전하게 하려면 용인을로 갈 수도 있었지만 표 후보와 큰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관리했던 시·군 단위의 지역구를 통째로 날려버린 의원도 있다. 정성호 더민주 의원이 바로 그 주인공. 정 의원의 지역구는 경기 양주·동두천. 정 의원은 16대 총선부터 이곳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목요상 한나라당 의원에게 3196표차로 패배한 정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목 의원의 재선을 저지하고 화려한 정치적 데뷔를 했다. 18대 총선 때 김성수 한나라당 의원에게 패배했지만 19대 때 재선에 성공했다. 그만큼 공을 들였던 지역이다.
이 동두천 선거구는 연천과 합쳐져 동두천·연천 지역구로 재탄생했다. 정 의원이 양주·동두천 지역에 표밭을 다져온 시간은 무려 17년. 양주 단독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정 의원은 결국 ‘동두천’을 포기해야 했다. 지난 10일 더민주는 정 의원을 단수공천했다. 정 의원은 “2012년에 제가 동두천에서는 13%의 표차로 이겼고 양주에선 8%를 앞섰다”며 “동두천이 떨어져 나간 부분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다”고 밝혔다.
김제·부안에 출마선언을 한 김춘진 더민주 의원도 마찬가지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전북 고창·부안. 김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다. 하지만 선거구 재획정의 영향으로 ‘고창’이 종전 단일 선거구였던 정읍과 합쳐지면서 정읍·고창 선거구가 됐다. 12대 국회(1985년) 이후 30년 만에 두 지역이 통폐합된 것. 김 의원은 고창을 떠나보내야 했다.
고창이 빠진 자리엔 김제가 들어갔다. 김 의원이 새로 관리해야할 지역구가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본래 김제는 최규성 더민주 의원이 3선을 했던 지역이다. 두 명의 현역 의원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10일 더민주는 최 의원을 컷오프(공천 배제)하고 김 의원을 단수 공천했다.
김 의원의 최측근은 “경선에서 이겨서 가면 김제 시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텐데…. 경선 없이 본선에 가야 하는데 부담이 있다”며 “선거구가 획정된 지 얼마 안 됐기에 김 의원의 인지도가 김제에서 낮아 만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