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김대중 정동영 김근태 “이름값 하겠습니다”
[그 정동영 아녜요~] 동명이인 후보들 “욕도 많이 먹어요”
유명 정치인과 동명이인인 후보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들 동명이인 후보들은 다른 후보들과 달리 높은 ‘개인 지명도’ 덕에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라이벌 정당’의 후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글 이름이 같은 후보는 두 사람. 공교롭게도 모두 ‘상대 당’ 간판을 달고 나왔다. 한나라당 경남 통영시 기초의원 후보와 경북 영양군 기초의원 후보로 나온 정동영 씨가 그들. 이 두 사람은 이름 석자가 그다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다.
영양군의 정동영 후보는 “유권자들이 내 이름을 한번 들으면 기억은 잘하는데 선거운동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어르신들은 이름만 보고 ‘노인들은 투표도 하지 말라고 해놓고 왜 왔느냐’고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최고위원과 동명이인으로 서울 용산구 기초의원에 출마한 한나라당 김근태 후보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여당 후보인 줄 알고 내 명함조차 안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동명이인인 2명의 후보는 선거에서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 전북 익산시 기초의원 후보와 민주당 전북 광역의원 후보가 그 주인공.
익산의 김대중 후보는 “유권자들이 내 이름을 듣고 크게 반가워 한다”며 “선거 캐치프레이즈를 ‘청년 김대중, 그 이름값을 하겠습니다’로 정해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전북 광역의원에 도전하는 또 다른 김대중 후보는 “일부 유권자들은 ‘대통령까지 한 양반이 뭐 하러 또 나왔느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또 부리부리한 내 외모가 ‘젊은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닮았다’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북 군산시 기초의원에 출마한 박정희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다. 한나라당 텃밭에서나 통할 것 같은 전략이지만 정작 박 후보의 분석은 다르다. 그는 “아예 선거로고송을 ‘새마을운동 노래’로 정해 박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했다. 선거구 특성상 노인분들이 많아 주효한 것 같다”고 밝혔다.
[가문의 영광 위해?] 장인-사위 맞장 이혼부부 재대결
대전 서구 기초의원에 출마한 한태빈 후보와 한수영 후보는 부녀지간이다. 그러나 선거구는 달라 아버지는 서구 사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딸은 바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 재선 지방의원인 아버지의 의정활동을 도와주다가 정치에 큰 뜻을 품고 도전한 한수영 후보는 “아버지가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죽을 각오를 하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신다”고 말했다. 두 후보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김화순 씨(58)는 딸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남편의 선거를 두 차례나 치르면서 터득한 비법을 딸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다.
충북 청주시 기초의원에 출마한 민노당 정세영 후보와 충북 광역의원 비례대표에 출마한 같은 당 홍청숙 후보는 부부사이다. 홍 후보는 예비선거 기간에 배우자로서 남편 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지만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정당득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정 후보의 아버지는 충청권 빈민·재야 운동의 정신적 대부 정진동 목사다.
▲ 천하장사 이봉걸 씨(왼쪽)와 추리소설가 김성종 씨 등 유명인사들도 출마했다. | ||
가족끼리 출마해 얼굴을 붉힌 곳도 있다. 경북 고령군 기초의원에 무소속으로 동반 출마한 이근우·권춘식 후보의 경우가 그렇다. 장인과 사위 사이인 두 후보는 한때 상대방의 입후보 포기를 권유하기도 했지만 결국 한치 양보 없는 진검승부를 벌이게 됐다.
지난 제3회 지방선거에서는 장인인 이 후보가 운수면에 출마하고 사위인 권 후보는 고령읍에 출마해 서로 등을 두드려줬다는 후문.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부터 기초의원 중선거구제의 도입으로 선거구가 통합돼 결국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게 된 것이다. 바뀐 제도를 탓해야 할지 아니면 두 후보의 넘치는 의욕을 탓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게 주변 지인들의 얘기.
또한 경기 고양시에서는 이혼한 부부가 한 선거구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고양시 파선거구의 한나라당 김영선 후보와 무소속 심규현 후보는 지난 94년 결혼했으나 지난해 말 이혼한 사이. 전 남편 심 후보는 3선에 도전하고 김 후보는 첫 도전이다. 심 후보는 “올 초에 김 후보가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출마 소식을 듣고 한때 ‘내가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심 후보는 주변의 만류와 아이들을 생각해 정정당당하게 선거에 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후광 얼마나 입을까] DJ 조카·이방호 의원 딸도 ‘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에서는 군수 자리를 놓고 김 전 대통령의 조카 김수용 씨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도전한다. 김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통령의 덕을 보는 것이 사실이지만 재임시절 야당 눈치 보느라 신안군을 위해 한 것이 없어 섭섭해하는 주민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의 정부 시절 신안군은 ‘역차별’을 당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DJ의 조카 김관선 씨도 같은 지역에서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공천을 받지 못해 결국 ‘조카들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인 이방호 의원의 딸 이지현 씨도 서울시 광역의원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아버지의 후광은 없다는 반응. 이 후보 측은 “이 후보가 어려서부터 정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정치에 뜻을 두기는 했지만 혼자서 능력을 키워나갔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 때 각각 손학규 캠프와 이회창 캠프에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전국구 스타 납시오] 천하장사 이봉걸 작가 김성종 출마
대전에서는 80년대 씨름판을 휩쓸었던 ‘인간 기중기’, 왕년의 천하장사 이봉걸 씨가 광역의원에 도전한다. 이 씨는 “나를 알아보는 유권자들이 많아 유리한 편”이라면서도 “2m가 넘는 키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인사하러 다가가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무릎 연골 파열 수술 후 지체장애인 6급 판정을 받은 이씨는 장애인들을 위한 공약을 제시했다.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로 유명한 추리소설가 김성종 씨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시의원에 도전한다. 김 씨는 “한나라당 텃밭이라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나왔다”면서 “나는 추리소설가라서 스릴을 즐기고 평범한 것을 싫어한다.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것도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에 도전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최고령·최연소 무려 ‘56년 차이’
이번 선거의 최고령 후보는 충남 청양군 가선거구에 기초의원으로 출마한 무소속 정락기 후보(81)다. 이번이 두 번째 도전. 정 후보 측은 “체력도 충분하고 지식도 충분하며 재력도 충분하다”며 젊은이 못지않은 활동을 약속했다.
반면 이번 선거 최연소 후보는 경기 용인시 마선거구에 기초의원으로 출마한 민노당 박해웅 후보(25)다. 현재 한국외대 4년에 재학 중으로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박 후보는 “지방정치의 부패와 비리에 항상 분노하고 있었다. 뒤에서 비판하는 것보다 직접 뛰어들어 바꿔보기로 결심했다”고 출마 동기를 밝혔다.
[또다른 이색 후보] 의약대결·10전11기·24억체납자
충북 증평군은 군수 자리를 놓고 의사와 약사가 ‘의·약 대결’을 펼쳐 화제다. 의사 출신의 한나라당 김영호 후보와 약사 출신의 현 증평군수 유명호 후보(무소속)가 그 주인공. 두 후보는 각각 배우자들의 직업도 같아 의사부부와 약사부부 간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은다. 김 후보는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이화여대 의대 출신의 동갑내기 부인을 두었고 유 후보는 충북대 약대 출신으로 부인이 약대 동기생이다. 김 후보 측은 “유 후보가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활동과 사회사업을 해와 인지도가 높은 반면 우리는 지역 정치권에 뛰어든 지 1년밖에 안돼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88년 총선부터 각종 선거에 열한 번째 무소속으로 도전하는 ‘집념’의 후보도 있다. 광주 남구청장에 도전하는 무소속 강도석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 네 차례, 구청장 선거 다섯 차례, 광역의원 선거 한 차례 등 지난 18년 동안 모두 열 번의 도전과 실패를 겪었으나 이번에 다시 출마했다. 강 후보는 “정치개혁을 위해 정당공천을 거부해왔다. 지난 열 번의 선거에서 2등만 세 번 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압승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광주 남구는 나의 영원한 지역구다”라고 말해 앞으로도 그의 도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사하구에서는 환경미화원 출신의 무소속 정명철 후보가 기초의원에 도전한다. 지난 10년 동안 사하구청 환경미화원으로 일해온 정 후보는 “부패한 정치를 깨끗이 청소하기 위해 나왔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정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2003년 동아대 법대에 입학했을 정도로 준비를 많이 해왔다. 그는 “환경미화원이지만 화이트칼라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갖추기 위해 법대에 진학했다. 내가 배운 법률지식으로 구정에 힘쓰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구 달서구에서는 실종된 ‘개구리 소년’ 5명 중 김종식 군의 큰아버지가 기초의원에 도전한다. 조카를 가슴에 묻은 무소속 김병규 후보는 “‘제2의 개구리 소년’이 없도록 하기 위해 출마했다”며 ‘스쿨폴리스제’의 달서구 전역 확대, 어린이 경보기 무상지원 등 어린이 보호를 위한 공약을 내세웠다.
20억 원대의 세금을 체납한 후보도 있었다. 충남 서산시 기초의원에 출마한 무소속의 가대현 후보는 최근 2년 동안 소득세만 24억 원을 체납했다. 가 후보는 “동생들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실질적 오너가 나라면서 국세청이 어마어마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것은 정치적 탄압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명예회복을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서산시장까지 해야겠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