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대들보 집에선 서까래 취급?
▲ 서장훈 선수 | ||
# 사건의 발단
12월18일 동부전에서 서장훈은 농구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부상을 제외하면 한 경기 최소 출전 시간을 기록했다. 40분 중 꼭 절반인 20분. 그것도 승부처인 후반전(20분) 내내 벤치를 지켰다. 서장훈은 경기 후 “오래 벤치에 앉아있으니 땀이 식어 나중에는 아예 점퍼를 입었다. 처음 경험해봤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틀 후(2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대구 오리온스전. 삼성이 전반 한때 30점 이상을 앞설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후반 들어 20점 안팎이었던 점수 차가 10여 점으로 줄자 안준호 감독은 서장훈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문제는 종료 5분을 남기고 발생했다. 오리온스가 경기를 포기, 2진을 내보내고 삼성도 대거 2진을 투입한 상황에서 서장훈이 다시 들어가게 됐다.
경기 후 서장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고, 아버지 서기춘씨는 화가 치밀대로 치밀어 마침 마주친 이성훈 사무국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이후 서장훈-삼성 불화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서장훈은 지난 22일과 23일 조승연 단장과 이성훈 사무국장을 만나 “이렇게 모욕적인 대우를 하고 팀의 간판 선수인 나를 믿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삼성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다. 삼성 구단은 “절대 트레이드는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서장훈은 “칼자루는 구단이 쥐었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가만있지 않겠다”며 정면대응을 선언했다.
# 불화의 시작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서장훈-삼성(주로 코칭스태프) 불화에는 표면에 드러난 사실보다 진짜 배경이 중요하다. 서장훈과 안준호 감독은 원래 농구판에서 가장 ‘간이 잘 맞는’ 선수와 지도자였다. 이런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사실 지난 시즌(2004∼2005)부터다. 의욕적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삼성은 정규리그 5위에 이어 6강 플레이오프에서 4강에 그쳤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안 감독과 프런트는 ‘서장훈이 느리고, 수비 등 팀의 궂은 일을 소홀히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서장훈은 “용병 선발을 엉터리로 해놓았지만 죽으라고 뛰었다. 그래서 4강을 만들어 놨는데 이제 와서 내 책임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찰떡 같던 궁합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장훈과 안 감독의 대화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두 사람은 올시즌 용병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부딪혔다.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안 감독은 “똑똑하고 농구를 잘 하는 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때로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주위에 푸념을 늘어놓았고, 삼성 프런트도 “선수에게 끌려 다니지 말라”고 주문했다.
# 선수 길들이기?
시즌이 개막되자 프런트의 지원을 받은 안준호 감독은 ‘서장훈 길들이기’에 나섰다. 출전시간을 조절, 프로 8년차인 서장훈의 평균시간을 역대 최소(경기당 33분)로 줄였다. 벤치로 불러들이는 횟수도 많아졌다. 이에 서장훈은 몇 차례 안 감독에게 항의를 했지만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한다”는 원칙만을 되풀이했다.
전임 감독이었던 김동광 감독에 이어 안준호 감독과도 마찰이 빚어지는 걸 원치 않은 서장훈은 일단 참고 뛰었다. 나름대로 슛을 던지는 횟수도 줄였고, 리바운드와 패스 등 팀플레이에 주력했다. 마침 몸 상태도 삼성에 온 이래 가장 좋아 호평을 받았고, 팀 성적도 선두권에서 크게 밀려나지 않았다.
▲ 안준호 감독 | ||
서장훈은 “내 잘못이 아니라 앞선(가드)에서 잘못을 해도 무조건 나를 뺀다. 패턴 등 삼성의 전술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은 농구계가 다 안다. 어떻게 앞선에서 실수한 게 다 내 책임인가”라며 가까운 측근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시즌 개막 두 달이 지난 12월 중순. 서장훈은 “더 이상 못참겠다”며 발끈한 것이다.
# 트레이드 가능성
서장훈은 조승연 단장, 이성훈 사무국장과의 만남에서 ‘트레이드 절대 불가, 대신 개선에 노력하자’는 답을 들었다. 반면 서장훈은 “이런 식의 푸대접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삼성에서 뛸 이유가 없다. 극단적인 대안도 생각해 보겠다”고 맞섰다. 부친 서기춘씨도 24일 조승연 단장을 만나 비슷한 원칙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준호 감독과 서장훈의 관계회복이다. 일단 지난 23일 안준호 감독과 서장훈 두 사람은 비공식적으로 만남을 갖고 관계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관계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관계회복에 실패하면 문제는 당장에 발생한다. 2005년 여름 비밀리에 서장훈 트레이드를 추진하기도 했던 삼성인지라 ‘서장훈 포기’를 택할 가능성도 있다. 서장훈도 가시적인 관계회복이나 합당한 대우가 이뤄지지 않으면 태업이나 은퇴불사 등을 내건 ‘무조건 트레이드’를 요구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서장훈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다면 올시즌 프로농구 판도를 단번에 흔들 만한 초대형 태풍이 된다. 불화설이 알려지면서 LG, KTF, 모비스, 전자랜드 등 여러 구단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서장훈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온다면 ‘무조건 영입’을 시도할 태세들이다. FA까지 남은 1년 반이 아니라 여기에 3년을 더해 아예 FA계약을 포함한 4.5년의 장기계약을 하자는 구체적인 얘기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