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1950년 미국과 전쟁을 치렀고, 쿠바는 1962년 자국 내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 건설을 허용했다가 미·소 간 핵전쟁 일보직전 상황으로 몰아갔던 쿠바 사태를 치렀다. 그 해 미국은 쿠바에 대해 경제봉쇄 조치도 내렸다.
이러한 쿠바와 북한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쿠바와 미국은 2014년 53년 만에 수교했다. 지난해 양국의 수도에 대사관이 개설됐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21일 쿠바를 공식 방문한다. 오바마 뒤를 이어 미국의 록 가수 믹 재거가 25일 하바나에서 공연을 갖는다.
1960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모든 쿠바인은 정치적 피난민”이라고 했고, 1966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쿠바이민조정법(Cuban Adjustment Act)을 만들어 미국 땅을 밟는 모든 쿠바인들에게 영주권 특혜를 주었다. 쿠바인의 망명을 유도해 카스트로 정권의 씨를 말리겠다는 정책이었다.
그런 양국관계가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국 의회의 최종 승인이 남아있긴 하나 경제봉쇄도 해제되기 시작했다. 양국민의 자유왕래가 허용돼 미국은 하루 전세기 10여 편에 불과했던 항공편을 정기 110편으로 늘릴 예정이다. 연간 수백만 명이 양국 사이를 오가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3월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가장 강력한 제재를 당했다.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응징으로 아홉 번째 유엔 제재다. 한·미 간에는 키 리졸브 군사훈련이 개시돼,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 파괴와 김정은 제거를 겨냥한 참수작전을 벌였다.
쿠바와 북한의 행로가 정반대인 것은 핵무기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쿠바 사태 때 핵전쟁의 위험을 경험한 이후 반핵주의자가 됐다. 극심한 전력난을 겪으면서도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았다. 쿠바의 청정지역화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미국 턱밑에서 핵무기 개발 의심을 사게 될 경우 미국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고 봐야 한다.
올해 90세의 카스트로는 2008년 혁명동지인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정권을 넘기고 은퇴했다. 피델은 “권력은 형제로 끝이다. 더 이상의 세습은 없다”고 선언했다. 라울은 2018년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권력을 넘길 예정이다. 이것이 핵무기 다음으로 권력을 3대 세습한 북한과 쿠바가 다른 점이다. 북한이 쿠바처럼 되기 위해 극복돼야 할 두 개의 과제이기도 하다.
피델은 2013년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핵전쟁 위협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절친’이었던 노 혁명가의 말을 알아들을 귀가 김정은에겐 없어 보인다. 지난 2월 쿠바를 10일 동안 여행하고 돌아오는 발길은 그래서 내내 무거웠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