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 17
경복궁 야경. 사진출처=문화재청
조선의 궁궐은 아름다웠다. 주변 자연과의 조화를 이뤘다. 궁궐은 위압적이지 않고 소박했다. 최고 권력이라도 절약과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는 걸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면적은 결코 작지 않다. 현재 경복궁 부지와 실제 궁궐 부지였던 청와대 일대, 궁궐 주변에 둘러싸고 있던 각종 궐외각사와 6조의 관아, 별궁, 군사시설이 있던 부지까지 합하면 베이징 자금성의 60% 규모다. 여기에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덕수궁) 등 4개의 궁궐이 더 있었다. 거기에 궁궐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 종묘가 창덕궁 권역에 속해 있었고, 경복궁 서쪽과 경희궁 북쪽에는 사직단이 있었다.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경복궁을 명작이라고 설명한다. ‘디테일이 치밀하다’고 했다. 근정전 월대의 돌짐승 조각의 의미와 암수 한 쌍의 멍엣돌이 지닌 해학, 영제교 석축에 있는 천록(뿔이 하나 달리고 온몸이 비늘로 덥힌 전설의 짐승,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고 전해짐)의 인간미에 감탄했다. 이뿐이랴. 궁궐 담장인 취병(일종의 생울타리)이 지닌 자연과 인공의 조화, 도로 포장재로서의 박석의 기능성과 현대적인 감각 등 디테일이 치밀하고 여유롭다고 했다.
하지만 일제는 궁궐을 마구 훼손했다. 일제의 궁궐 훼손은 ‘식민지배’를 문명이라고 보고 ‘피식민’을 야만으로 규정한 프랑스 식민지 정책에 따라 진행되었다. ‘고상한 문명화의 사업’이라는 미명으로 왕궁을 식물원이나 동물원, 박물관 혹은 일반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박람회를 위한 부지로도 사용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에는 한일은행 직원 운동회나 상공운동회가 경복궁내에서 열린다는 기사(1920년 4월11일자, 4월 15일자 등)가 심심찮게 실려 있다.
공원 조성이나 박람회 건물을 지으려고 경복궁 전각과 건물이 헐려나갔다.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중건한 뒤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北闕圖形)’에 따르면 기재된 건물 수가 509동(6806칸: 기둥과 기둥사이가 한 칸)이었다. 광복 후 남은 건물은 고작 40동(875칸)에 불과했다. 경희궁이나 창경궁 등 나머지 궁궐의 사정도 비슷하였다. 일제는 이렇게 해체된 궁궐 내 전각, 건물, 문, 수목 등을 일본인이나 조선인에게 팔았다. 방매된 궁궐 전각 중 다수가 남산동, 필동, 용산에 있는 일본계 사찰과 요정, 일본인 부호의 저택으로 팔려나갔다. 일부는 바다건너 일본까지 실려갔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자선당 유구(위)와 1999년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재건축된 자선당(아래). 1995년 자선당 유구 환수에 성공했지만 경복궁 가장 북쪽 건청궁과 녹산 사이에 방치되다시피 했다. 사진출처=문화재청
박문사(博文寺)는 조선 궁궐 훼손의 대표 사례다. 일본인 거주지였던 남산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사찰 박문사가 있었다. 이 절에서는 일본인 및 친일파 위령제, 조선인 교화강습회, 태평양전쟁 필승대회 등이 열렸다. 식민지 지배이념을 실천하는 중심기구였다. 이 절을 짓기 위해 경희궁 정문이었던 흥화문을 정문으로, 경복궁의 선원전과 부속 건물은 사찰 건물로, 원구단 자리에 있던 석고전을 종각으로 사용했다.
광복 이후에는 훼손된 궁궐의 건물들이 복원됐을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동국대학교에 옮겨진 경희궁의 승정전, 국궁장이었던 황학정, 박문사에 세워졌던 흥화문, 원불교에서 관리한 경복궁의 융문당과 융무당 등 일부 건물들은 비교적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러나 이들 건물 일부도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이전 되는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방치되었다.
일어났던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다. 그 역사 속에서 생산된 예술작품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것도 역사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노력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노력이기도 하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국외소재문화재 재단, 눌와, 2013 「궁궐의 눈물, 백년의 침묵」, 우동선. 박성진외 6명, 효형출판, 2009 「누가 문화재를 벙어리 기생이라 했는가」, 고제희, 다른세상, 1999 「국보순례」, 유홍준, 눌와, 2011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시대의 다섯 궁궐 이야기」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조선 궁궐 토막사건①」 중국 자금성 크기인 조선의 궁궐… 일제가 토막냈다, 2015. 08. 18. 이코노미조선 「궁궐100년」 ① 경복궁, 만신창이가 된 법궁…여전히 복원중, 2015. 08. 12 연합통신 「궁궐100년」 ② 창경궁, 유원지에서 궁으로 돌아오기까지, 2015. 08. 12 연합통신 「궁궐100년」 ③ 창덕궁·덕수궁, 완전 복원 향한 긴 여정, 2015. 08. 12 연합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