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두 정 감독 ‘마법’을 풀다
▲ 지난해 11월 김영철의 스웨덴전 경기 모습. 이날 그는 추가골을 넣는 등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두 번째 순서는 현재 국가대표팀 수비의 대들보 역할을 맡고 있는 중앙수비수 성남 일화의 김영철(성남). 지난해 이란과 스웨덴, 그리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평가전에 풀타임 출장하며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다. 스웨덴전에서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림 같은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 홀어머니의 이름으로
김영철을 지도해본 지도자들은 그의 어머니 얘기부터 꺼낸다. 하나같이 “영철이가 성실하게 선수 생활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받침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영철은 아버지가 일찍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매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오로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영철의 힘이 됐던 두 누나조차 서운함을 느낄 정도로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아주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
그의 대학 은사인 정종덕 전 건국대 감독도 “영철이 어머니만 생각하면 그저 존경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라며 “대학 졸업할 때 영철이에게 ‘어머니 이제 그만 재혼하시게 해드려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고2 때까지만 해도 ‘미완의 대기’ 정도로 평가받던 김영철은 그 해 겨울 방학 때 실력이 급성장하면서 고교, 대학, 프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겨울 방학 때 실력이 늘어난 데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김영철의 고교 은사인 조정구 당시 부평고 감독(현 의정부고 감독)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가 부평고 훈련장에 찾아와 김영철을 졸업 후 데려가겠다고 떼를 쓴 다음 날부터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것.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지난 2002년 월드컵대표팀 코치인 정해성 현 부천 감독이다. 조 감독은 “정 감독은 당시 LG치타스(현 FC서울)를 맡고 있던 고재욱 감독과 부평고를 찾아와 영철이를 졸업 후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날부터 영철이의 플레이가 너무 좋아졌다”며 “어떻게 보면 정 감독이 영철이의 은인일 수도 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프로팀 스카우트 제의에 자신감을 얻은 김영철은 겨울 방학을 마치고 고3에 접어들면서 전국 고교 수비수들 중에서는 랭킹 1위를 내달리게 됐다. 이런 유망주를 가만히 놔둘리 만무한 법. 연세대에서 끈질기게 김영철을 달라고 삼고초려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선수를 친 건국대 정종덕 감독이 김영철을 ‘모셔가게’ 된다. 그 이후 건국대 축구부에서는 1년 후배인 이영표(현 토트넘 홋스퍼)보다 더 비중 있는 핵심 선수로 인정받으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 드디어 대표팀 주전으로
김영철은 대학 때와 99년 성남 일화에 입단하면서도 줄곧 대표팀 수비수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항상 굵직한 대회를 앞두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부터는 이상한 징크스가 생겼다. 히딩크 감독이나 쿠엘류, 본프레레 감독이 관전을 하는 날이면 꼭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 스스로 실수를 범하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대표팀 감독이 오는 날이면 팀이 실점하는 상황에 꼭 김영철이 연결됐다고 한다.
이러한 저주를 풀게 한 사람은 정종덕 감독이다. 본프레레 전 감독이 경질된 후 수비수 보강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정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쓸만한 수비수 좀 추천해봐”라고 운을 떼자, 정 감독은 “사람 그렇게 볼 줄 모르냐! 다른 녀석 자꾸만 시험하지 말고 제발 영철이나 데려 가라”며 이 위원장을 몰아세웠다고. 결국 기술위원회는 신임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김영철의 컨디션과 플레이를 유심히 체크한 자료를 보냈고 아드보카트 감독도 김영철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정 감독의 호통 한 방이 제법 약발을 받은 셈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