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한국여자오픈 때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장하나가 출전, ‘한국의 미셸 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선전하던 슈퍼 초등학생은 9번홀을 앞두고 예기치 못했던 일로 벌타를 받았다. 플레이가 지연돼 서너 개 팀이 기다리고 있는 9번홀 앞. 지루하던 차에 아버지 장창호씨가 딸에게 무심코 “퍼팅을 때리지 말고 쭈욱 밀어주란 말야, 왜 자꾸 때려”라고 말했고, 이를 취재하던 한 통신사 기자가 가십으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조금 후 인터넷에 올랐고, 이를 본 한 골프팬이 골프규칙 8조 1항 ‘어드바이스 조항’을 위반했다고 경기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일이 커진 것이다.
뒷얘기지만 당시 골프 취재 경험이 많지 않았던 해당기자는 경기 전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고 이것이 잘 안되자 경기 내내 따라다니며 취재했다(원래 이러면 안 된다). 사실 아버지 말고 해당기자도 플레이 중인 장하나와 얘기를 했으니 정확히 따지면 이것부터가 문제였던 것이다.
필자도 2002년 나인브릿지클래식 때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씨가 전반 나인홀을 마치고 이동하던 딸에게 “세리야 한라산을 생각해(마운틴 브레이크를 유념하라는 뜻)”라고 한 마디 던진 것을 목격했다. 마침 박세리는 이후 좋은 스코어를 냈고 우승까지 했다. 제대로 된 기사거리였다. 큼지막하게 기사화를 했고 좀 자화자찬을 하자면 국내 주요 신문과 방송은 이를 받아서 대서특필했다. 다행히 그 때는 조용히 지나갔지만 장하나 사건 이후 한 꼼꼼한 골프팬에게 ‘2002년 나인브릿지의 한라산 조언은 골프룰 위반이 아니냐’는 항의메일을 받기도 했다.
위의 두 사례처럼 심판이 없는 스포츠인 골프는 알고 보면 룰이 대단히 까다롭다. 동반자에게 몇 번 클럽을 사용했냐고 물어도 안 되고 거리 등 코스에 관해 조언을 구해도 안 된다. 클럽수도 14개까지만 허용된다.
2006년은 골프 플레이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해다.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의 왕립골프협회(R&A)가 ‘거리’에 대한 개념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거리는 ‘공지된 정보’로 캐디는 물론이고 동반 플레이어 등 누구에게도 거리를 물어보는 것이 허용됐다.
이는 자동적으로 GPS시대를 맞아 ‘거리측정기 사용’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은 로컬룰에 따라, 즉 대회마다 거리측정기 사용을 별도로 승인받아야 하는 제한이 있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대회 주최 측의 판단에 따라 거리측정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골프룰 14조3항).
휴대폰보다도 작은 거리측정기만 있으면 캐디와 남은 거리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싸울 필요가 없다. ‘캐디가 거리를 잘못 알려줘 실수했다’는 핑계도 사라지는 것이다. 또 플레이 속도가 빨라지는 장점도 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측정기는 프로골퍼뿐 아니라 주말골퍼들에게도 대중화될 전망이다.
휴대폰 MP3 등 IT제품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잘 사용한다는 한국 사람들. 조만간 허리춤에 거리측정기를 단 주말골퍼의 모습이 신풍속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스포츠투데이 골프팀장 einer@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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