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호주에서 끝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ANZ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만 16세 여고생 양희영이 우승했다. 세계 2대 투어인 LET에서 아마추어가 우승한 것은 22년 만의 일이고 호주여자프로투어 메이저대회에서는 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호주로 골프유학을 떠난 지 1년2개월이 된 양희영은 어느 나라 사람일까. 정답은 ‘투 비 오시(To be Aussie·‘오시’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라는 뜻)’. 아직은 한국 국적이지만 조만간 호주 시민권을 취득할 예정이다.
양희영은 이번 대회 직전 호주정부에 시민권을 신청했다.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호주가 골프선수로 성장하는데 이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천에 널려 있는 골프장, 저렴한 골프비용,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 등. 아직도 인터뷰를 한국어로 할 정도로 영어가 서툴지만 호주를 새 나라로 택할 이유는 많기만 했다.
‘양희영의 16세 기적’은 호주를 놀라게 했다. 방송과 신문의 톱기사를 장식했고,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 교육부는 세계적인 프로 강호를 제치고 우승한 양희영을 홍보대사로 위촉했으며 이와 함께 양희영이 아마추어로 우승 상금을 받지 못한 까닭에 2만호주달러(약 1천4백만원)의 특별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 정도니 양희영의 호주 국적취득은 시간문제다.
‘뉴질랜드의 골프신동’ 이진명(16·대니 리)도 상황이 비슷하다. 이군은 지난 1월15일 뉴질랜드 아마추어 메이저대회인 ‘뉴질랜드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성인국가대표를 큰 차이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가뜩이나 최근 3년간 6승 등 각종 대회에서 신기에 가까운 샷을 선보인 이군인지라 뉴질랜드 언론은 또 한 번 흥분했다. 아예 ‘뉴질랜드판 남자 미셸 위’로 통할 정도다.
한국에서 무명이었던 양희영과는 달리는 이진명은 2년 연속 주니어국가대표 상비군에 1위로 선발될 정도로 한국 주니어 무대를 휩쓸었다. 상비군이 되면 혜택이 많아 다른 사람들보다는 국내에서 골프를 하기 수월한 편인데 그래도 골프천국 뉴질랜드를 택한 것이다.
우승 직후 이진명은 마침 3년 전 직장암 수술을 받았던 부친 이상주씨(47)의 병이 재발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한국에도 골프명문 안양 신성고 등 ‘언제든 오라’는 학교가 많았다.
그런데 일단 뉴질랜드에 눌러 앉기로 했다. 뉴질랜드골프협회(NZGA)는 시민권을 포함한 갖가지 혜택을 내걸었고, 최연소 국가대표(세계아마추어선수권인 아이젠하워컵)까지 보장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치르고 2003년 초 뉴질랜드로 떠난 이진명은 유난히 대한민국에 대한 긍지가 강하다. 절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각오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뉴질랜드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이상주씨는 “곧 시민권을 취득할 것 같다. 일단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나중에 다시 고민하겠다.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손재주와 집중력이 좋아 골프에 강한 한국 사람들답게 미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등 전 세계에 걸쳐 제2의 양희영, 이진명이 즐비하다는 사실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한국 사람들, “긴장 좀 합시다!”
스포츠투데이 골프팀장 einer@stoo.com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