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해 준 동료까지 대기발령 직무정지…고법, 1심 깨고 사측 책임 인정
2012년 A 씨(여·38)는 르노삼성자동차에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해 3월 A 씨가 속한 팀에 최 아무개 씨가 새로운 팀장으로 발령받았다. 이때부터 A 씨의 고통이 시작됐다. 최 씨는 딸까지 둔 유부남이었다. 시작은 최 씨가 A 씨에게 “오일마사지를 해주겠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이었다. 이후 A 씨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차로 태워주겠다” “가면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 등의 얘기로 데이트를 신청했다. 회식자리에서는 A 씨의 허벅지를 돌려 최 씨 방향을 보게 하며 “사랑한다”고 외치기까지 했다.
A 씨는 최 씨에게 1년 동안 시달렸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 A 씨는 결국 퇴사할 결심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부서장에게 털어놓자 부서장은 “둘 다 회사를 그만두는 게 제일 깔끔하다”며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 결국 A 씨는 2013년 초 회사 인사팀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인사팀 관계자들은 “A 씨가 보통이 아닌 여자다” “A 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결국 A 씨 동료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최 씨는 정직 2주의 처분을 받았다. 정직의 사유는 앞서의 오일마사지 발언과 회사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유 등이었다. A 씨가 한국여성민우회에 상담요청을 한 시기도 이즈음이었다.
A 씨 측은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에 따르면 회사는 성희롱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2013년 6월 A 씨는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최 씨와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전문 업무를 담당하던 A 씨는 사건 이후 공통 업무에 주로 배치됐다.
이후 A 씨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했다. 회사 측은 “A 씨가 동료들로부터 강제적으로 진술서를 받았다”며 견책 징계를 내렸다. 뿐만 아니라 진술서를 작성한 동료 B 씨 역시 불이익을 받았다. B 씨가 근무했던 부서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B 씨는 근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일주일 정직 처분을 받았다. 다행히 노동위원회가 부당징계 판결을 내려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 씨와 B 씨가 관련 증거를 모으는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회사기밀 누출 혐의까지 받았다. 결국 이들은 대기발령 및 직무정지를 당해 회사 회의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만 했다. 당시 경찰서까지 가서 회사서류와 개인서류를 구분했고 주인이 모호한 서류는 경찰서에 보관했다. 또한 회사는 절도죄 혐의로 이들을 형사 고소했다. A 씨는 여전히 고소건이 걸려있다. B 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라 더 이상 사건에 관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고소건도 해결된 상태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14년 2월이다. 당시 사건 관련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 법원은 1심에서 최 씨의 성희롱을 인정하면서 A 씨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사직종용, 부당징계, 직무정지, 대기발령 등 각종 불이익 조치를 행한 사측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
지난 10일 한국여성민우회는 삼성르노자동차 사내 성희롱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한국여성민우회
이에 A 씨 측은 항소했다. 최 씨는 A 씨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해 사건에서 물러났고 A 씨와 회사 간의 싸움이 됐다. 지난해 12월 법원은 2심에서 A 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법원 관계자는 “상급자의 성희롱은 그 자체로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해야 할 기본 직무를 위반한 행위로 사무집행에 관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사용자가 알 수 없었다고 면책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법원은 회사 측이 부당한 업무배치를 했다는 이유로 700만 원, 당시 사내 조사 담당자는 음해성 발언에 대한 위자료로 300만 원을 A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사가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일요신문>은 르노삼성자동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2014년 르노삼성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성희롱이 있었던 건 분명하고 유감스러우나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마쳤다”고 밝혔다. 당시 피해자의 부당 징계와 관련해서는 “진술을 확보할 때 A 씨가 부하 직원에게 진술서를 강요해서 받은 게 있었고 부하 직원이 이에 항의해서 징계를 내렸다”며 “기밀문서 유출에 의한 징계는 성희롱과 상관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A 씨는 회사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A 씨 측은 최근 인사고과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혔다. A 씨는 2012년 인사고과에서 최우수등급을 받았으나 사건이 터진 2013년 이후부터는 계속 하위고과를 받아왔다. 특히 지난해 인사고과에서는 ‘협력 부족’, ‘성과 없음’을 이유로 최하위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A 씨 측에 따르면 본인에게 업무 관련 이메일이 바로 오지 않고 타인을 통해 업무를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또한 당초 목표에 없었던 디자인부와의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저성과 이유에 포함됐다. 게다가 재판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직원을 A 씨 직속상사로 배치해 협력이 더 힘든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A 씨는 인터뷰를 잘못 했다가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을까 두렵다며 관련 입장도 한국여성민우회를 통해 밝히고 있다.
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사실 이번 사건은 대기업이라서 공론화가 가능했다”며 “5인 미만의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에서는 성희롱 피해자를 바로 해고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1월과 2월 두 달 동안 한국여성민우회에 들어온 상담 건은 70건이 넘는다. 이 가운데 36%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한 뒤 불이익조치를 받은 것과 관련 있다. 류형림 활동가는 “사내 성희롱의 경우 증거수집이 중요하며 동료들의 증언도 증거가 될 수 있다”며 “퇴사 후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증거 수집에 있어서는 재직 중에 대응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