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욕심은 ‘대~한민국’에 묻어라
▲ 대표선수들. | ||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 이동국(포항)이 지난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홈디포센터에서 실시된 팀 훈련 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1월16일부터 시작된 대표팀의 장기 해외 전지훈련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자기 나름의 느낌을 털어 놓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선수들 간의 지나친 생존경쟁 때문에 팀워크가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또 한 명의 대표팀 공격수 정조국(서울)도 5일 미국과의 비공개 연습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비슷한 얘기를 했다. 정조국은 취재진으로부터 ‘선수들간의 경쟁이 치열한데 느낌이 어떤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동국이형이 많은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 역시 경쟁이 심하다 보니까 팀워크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정조국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받았다.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기보다는 도전하는 입장인데 어떤가’라는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겸손했다.
“여기 온 것 자체가 기뻐요. 동국이형에게 도전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동국이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워서 돌아가고 싶어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전훈 시작에 앞서 이번 전훈이 갖는 의미를 분명히 밝혔다.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원정경기의 경험을 쌓게 만들겠다는 것이 한 가지 목표였다. 또 다른 하나는 선수들을 골고루 테스트해 보고 독일월드컵에 함께 갈 만한 멤버들을 골라내는 것이라고 했다.
선수들로서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또 독일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에 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난 1월18일 열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대표팀과의 경기부터 선수들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전훈 평가전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독일로 가는 기회의 시작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내가 오늘 경기에서 뭔가 보여줘서 감독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앞서다 보니 이동국의 지적대로 팀워크에 문제가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 것이다.
대표팀 내부에서 동료의 플레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얘기를 하더라도 주장 이운재(수원)나 고참급 선수들이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팀 승리를 위해 열심히 뛰자’는 수준의 당부일 수밖에 없다.
굳이 이번 전훈이 아니더라도 독일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돼 왔던 선수들에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팀플레이가 우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애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 보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는 선수들의 처지와 각오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른바 ‘젊은 피’들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 포함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들의 대답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가능성은 50 대 50이라고 봅니다”라는 말로 한결같다.
▲ 이운재 | ||
“선수 개개인이 긴장감을 느끼면서 경쟁하고 있다는 게 좋아 보입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좋아 보이고요. 자기 점수가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는 2006년 월드컵이 끝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2010년 월드컵도 있고 그 다음에도 기회는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개인이기 전에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팀을 위해 경기를 하자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단체 스포츠인 축구에서 팀플레이를 하자는 얘기는 당연하다. 그런데 이운재가 후배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핌 베어벡 수석코치도 멕시코와의 평가전을 이틀 앞둔 14일 선수들에게 비슷한 주문을 했다.
“공격에서는 어느 정도 개인플레이도 할 수 있고 선수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비에서는 팀플레이와 조직력이 중요하다.”
코칭스태프 역시 선수 테스트와 팀의 조직력을 끌어 올리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고충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차피 유럽파가 빠진 상황에서 갖는 전훈이라면 이번 기회에 팀플레이와 조직력을 완성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전훈 평가전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던 당초의 생각대로 이번 기회에선 선수 테스트에만 주력하는 게 훨씬 나을 수 있다.
시험 대상인 선수들에게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훈련과 경기에서 보여달라’고 주문하고 결정은 코칭스태프가 내리면 된다. 팀워크를 끌어 올리는 문제는 합격점을 받았다고 판단된 선수들과 유럽파가 합류했을 때 고민하면 된다. 전훈 멤버만으로 독일월드컵에서 뛸 엔트리 23명과 베스트 11을 확정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1-0으로 이긴 멕시코전을 끝으로 사실상 전훈 일정을 마감했다. 22일 열리는 시리아와의 2007 아시안컵 예선은 승패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경기다. 사실상 국내파와 일본프로축구(J리그) 멤버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3월1일 앙골라와의 평가전엔 유럽파가 모두 합류할 예정이다. 그때부터는 사실상 2차 경쟁이 시작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뛸 선수들을 고르는 마지막 시험 무대라 더욱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주전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분명히 팀워크가 우선시돼야 한다.
독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목표는 어느 한 선수의 특출난 활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16강 고지 너머로 전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LA=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