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들 나올 땐 무료 입장 시켜!
‘국보 투수’의 뒤에는 선판규 옹이 있었다. 큰 아들이 일찍 운명을 달리하자 선판규 옹은 둘째 아들 선 감독에게 지극 정성을 다했다. 야구선수는 몸이 재산이라는 생각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자연산 장어와 보양식을 구해와 아들에게 먹였다. 중학생 아들의 훈련을 위해 집 근처의 땅을 고르고 야간훈련을 할 수 있게 등불까지 달아준 일화도 있다.
당연히 해태 타이거즈와의 연봉협상에서도 선판규 옹이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있었다. 지난 87년의 일이다. 선 감독은 85년에 데뷔해 입단 2년째인 86년에 24승 6세이브란 걸출한 성적을 남겼다. 87시즌 연봉협상을 하면서 일이 꼬였다. 구단은 100%가 조금 넘는 인상률을 적용해 4천5백만원을 제시한 반면, 선판규 옹은 투수 최고 대우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섰다.
무려 8차례나 계속된 지리한 협상에도 불구하고 구단측이 요지부동이자 고인은 “다 필요 없다. 연봉 없이 백지계약을 하고 무료봉사를 하겠다. 대신 동열이가 등판하는 경기에는 관중을 모두 무료로 입장시키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해태 경기, 그것도 선 감독이 등판하는 날이면 빈틈이 없었던 광주구장이다. ‘무료 관중’ 발언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팬들도 해태 구단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구단이 KBO에 임의탈퇴 신청서를 넣고 선 감독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서면서 사태가 겨우 진정됐다.
고인은 단순히 몸값을 올리기 위해 구단과 싸운 것이 아니었다. 선 감독이 광주일고 졸업반 때 서울의 모 대학에서 돈다발을 싸들고 고인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선판규 옹은 “의리가 중요하다”며 아들을 예정대로 고려대에 진학시켰다. ‘무료 관중 논란’ 때에도 최고 투수인 아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게 목적이었다고 당시 해태 구단 관계자들은 회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엔 어지간한 선수들이 모두 에이전트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구단과 직접 연봉 협상을 할 일이 없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에이전트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매해 12월이면 구단 운영팀과 선수들 간의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구단은 협박, 회유, 동기부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액을 관철시키려 하고 선수들은 다양한 통계치와 예전의 구두 약속 등을 거론하며 자신의 요구액을 받아내려 한다.
지난해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삼성 양준혁은 분위기를 잘 이용했다. 구단측에서 노장인 자신과의 계약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자 FA 선언과 동시에 ‘백지위임’을 선언했다. 결국 양준혁은 계약 기간 2년, 계약금 5억원에 연봉 4억원의 총액 13억원짜리 계약으로 성과를 올렸다. FA가 ‘백지위임’을 하는 것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있지만 양준혁으로선 적절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국내프로야구에선 풀타임 9년을 마치고 FA가 되기 전까지는 연봉협상에서 선수가 주도권을 쥐기 힘들다. 구단측이 선수 보유권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성실한 모습, 절제 있는 사생활을 보인 선수들에겐 아무래도 구단측에서 조금 더 인심을 쓰게 마련이다. 때론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연봉협상 테이블이지만, 역시 사람 사는 곳의 일이기 때문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