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러브콜’ 뿌리치고 터키로
이을용이 고졸 출신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내용이다. 물론 그한테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지만 어떻게 보면 그 스스로 자초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을용이 축구에 대한 회의를 갖고 대학 진학을 스스로 포기한 것은 강릉상고 2학년 때다. 그해 여름 이을용은 난생 처음으로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돼 스포츠신문에까지 ‘이을용’이라는 이름이 크게 나왔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단지 이을용은 아무런 이유 없이 대표팀 명단에서 빠지고 다른 선수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이때 느낀 실망감과 배신감이 워낙 컸고 게다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쌀가게가 잘 되지 않은 관계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아예 대학 생각을 접기로 했다.
그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감독과 코치가 어렵게 울산대 입학 기회를 만들어주었지만 이을용은 축구부 유니폼만 받고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그후 이을용은 부산 신발 공장 등을 전전하며 축구와의 인연을 끊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교 때 그를 지도했던 정치수 감독(현 강원도교육청 장학사) 등의 끈질긴 설득과 도움으로 철도청에 입단, 축구화 끈을 동여맨 뒤 강릉상고 선배인 이강조 감독의 부름으로 상무에 입대하며 두각을 보이게 된다.
지난 2002 월드컵이 끝난 직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을 맡은 히딩크 감독이 이을용에게도 러브콜을 보냈다는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비화다. 정 장학사에 따르면, 이을용은 히딩크 감독의 입단 제의를 받고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다고 한다. 다름 아닌 이영표 때문이었다. 월드컵 때까지 이을용은 대표팀 내에서 왼쪽 윙백 자리를 놓고 이영표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였다.
이영표의 부상 때문에 월드컵 예선 두 경기를 선발로 뛰기는 했지만 이을용은 스스로 이영표와는 싸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고. 그러던 차에 다시 이영표와 경쟁을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었다.
당시 이을용으로부터 이 같은 고민을 직접 전해 들었던 정 장학사는 “을용이가 영표와 경쟁을 벌이는 것을 고민하자 히딩크 감독이 ‘너의 주전 자리를 보장하마. 영표는 오른쪽 윙백 자리나 다른 포지션으로 보낼 것’이라며 설득을 했었다”고 전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