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가 떠야 그의 ‘꿈’도 부활한다
▲ FIFA월드컵 트로피 투어 행사에 참석한 정몽준 축구협회장(오른쪽)과 아드보카트 대표팀 감독. 아래는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후보단일화 모습. 당시 정 회장의 대선 전야 ‘지지 철회’ 해프닝은 거의 잊혀져가는 분위기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요즘 축구계에는 독일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성적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떠돈다. 특히 월드컵에서의 성적에 따라 정 회장의 정치 활동이 여러 면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어찌 보면 ‘2002 again’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 회장 입장에서도 가장 절실한 소원일 것이다.
4월 19일 JW 매리어트 호텔. 본격적인 학술회의가 열리기 전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기조 연설에 앞서 박희태 국회 부의장이 축사를 했다. 박 부의장은 “예정에 없던 순서인데 아마도 이 사람의 순발력을 테스트하려는 것 같다”며 마이크 앞에 섰다.
박 부의장은 “나는 정몽준 회장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축구 보러 오라면 가는 사람이고 우즈베키스탄에 함께 가자면 가는 사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오늘 정치학회에서 축구와 관련된 학술회의를 한다고 해서 축구와 정치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축구와 정치를 가장 잘 접목시킨 사람이 정몽준 회장”이라고 말했다.
박 부의장의 얘기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로 옮아갔다. 그는 “지난 2002년에 월드컵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정몽준 회장이 우리와 합쳤어야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힘을 합치는 바람에 결국 우리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겨줬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결코 농담으로 넘길 수만은 없는 얘기이기도 했다.
박 부의장은 “존경하는 정몽준 회장이 이번 독일월드컵을 계기로 다시 한번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를 바란다”는 덕담으로 축사를 맺었다. 연단 아래의 정 회장은 다소 멋쩍은 웃음을 띠었지만 결코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정 회장은 기조연설 후 가진 독일월드컵 D-50을 즈음한 인터뷰에서 ‘박 부의장의 축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운을 뗀 정 회장은 “며칠 전 박지성과 이영표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 경기에서 상대는 적이 아니라 경쟁자일 뿐”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상대를 적이 아닌 경쟁자로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 특유의 ‘동문서답형’ 답변이었지만 적잖은 의미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박 부의장의 말 대로 정 회장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국민적 영웅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월드컵을 유치하고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이끈 주역이라는 평가와 함께 유력한 대선 주자가 됐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정 회장의 정치적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잘 알다시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 단일화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패했고 대선 하루 전날(2002년 12월 18일) 밤엔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 회장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정몽준이라는 이름은 정치판보다는 축구계에서 훨씬 더 빛을 발했다. 적어도 지난해 가을까지는 그랬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http://www. mjchung.com)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개편된 홈피 메인 화면엔 ‘꿈★은 계속됩니다’라는 슬로건이 게시돼 있었다.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선언도 했다. 네티즌과의 접촉 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도 개설했다.
독일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정 회장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재도전 행보도 바빠지고 있다는 게 축구계 안팎의 시선이다. 정치권에서도 정 회장의 무게감은 조금씩이나마 커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 축구인은 “한국 축구가 독일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면 정몽준 회장의 대중적 인기도 다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2년 대선 전야에 지지 철회라는 정치적 해프닝을 연출했지만 어느 정도 잊혀졌고 ‘용서받은’ 측면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정 회장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관건은 독일월드컵에서의 성공 여부라고 볼 수 있다. 대표팀 성적이 좋아야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마지노선은 16강 진출이고 그 이상의 성적이라면 정 회장에겐 금상첨화일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축구협회 회장 4연임에 성공했다. 동시에 축구협회 회장직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다짐도 했다. 박 부의장의 표현대로라면 ‘축구와 정치를 접목시키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약속을 지킨다면 정 회장의 임기는 2009년 1월로 끝이 난다. 이른바 재야 축구인들이 바라고 걱정하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다음 대선은 2007년 12월에 있을 예정이다. 만일 정 회장이 차기 대선에서 정치적으로 크게 움직인다면 2002년처럼 축구협회 회장직 사퇴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설사 독일월드컵에서 정 회장이 한국 축구와 함께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 ‘약발’이 차기 대선까지 지속될 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 회장에겐 또 한 번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순수한 스포츠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 기회는 한국 축구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2007년 8월 18일부터 9월 9일까지 23일간 국내 6개 도시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17세이하)축구선수권대회가 그것이다. 비록 청소년대회이기는 하지만 이 행사는 한국이 단독으로 유치한 최초의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다.
물론 독일월드컵과 세계청소년대회에서의 성공이 정 회장의 정치적 꿈을 이루는 보증수표라고 단언할 순 없다. 하지만 최소한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 이견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정치 활동 재개를 선언했지만 정 회장은 축구와 정치를 연계시켜 보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마저 부정할 순 없다. 그는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축구협회의 수장인 동시에 한때 인기 절정의 대선 후보에까지 올랐던 유력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박 부의장의 덕담대로 정 회장이 독일월드컵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