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명예훼손 징역 2년 선고받았지만 공갈 혐의 무죄 나오자 ‘역공’
일요신문 DB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
법원이 인정한 한 씨의 죄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상해)·협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이다. 한 씨가 범한 공동상해죄는 A 선수 부부와 관련이 없다. 한 씨가 이 상해죄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 도중, A 선수 부부에게 협박죄와 명예훼손죄를 저질렀던 것.
판결문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씨는 2009년경 팬으로 좋아했던 A 선수를 우연히 소개받아 친하게 지냈다. A 선수가 결혼하자 아내 B 씨와도 친분을 이어갔다. 지난해 3월경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한 씨는 특별한 수입이 없자, B 씨가 자신의 고소로 절도죄로 처벌받았다는 점을 이용해 A 선수를 협박하기로 결심했다.
출소 3개월 뒤인 6월 17일, 한 씨는 B 씨의 절도 내용이 들어있는 법원의 약식명령문이 담긴 편지봉투를 C 씨에게 주면서 “A 선수를 찾아가 전달하고 저녁 7시까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으면 편지내용을 유포하겠다고 전해라”고 부탁했다. C 씨가 A 선수에게 편지를 전달했지만 반응이 없자 한 씨는 3일 뒤 A 선수가 투숙 중인 호텔로 전화해 “전화 달라고 했는데 왜 안 주나, 그럼 내 뜻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한 씨는 2015년 6월 26일, A 씨 소속 구단 홈페이지에 “저는 A 선수 와이프 절도사건의 제보자다. 제가 구속됐을 당시 B 씨가 저희 집에 와서 가방과 시계를 훔쳐갔다”는 글과 약식명령문을 올렸다. 이튿날 그는 A 선수의 내밀한 사생활을 폭로하며 온라인 야구 커뮤니티에 2차 게시글을 올렸다.
1심 법원은 “유명 프로야구 선수란 점을 이용, A 선수를 협박하고 A 선수 부부의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 A 선수 부부가 입은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크다”고 한 씨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판결주문에서 법원은 “한 씨에 대한 공소사실 중 공갈의 점은 무죄다. 무죄 부분을 공시한다”고 덧붙였다. ‘반전 스토리’의 시작점이다.
한 씨가 구속됐을 당시 관건은 ‘공갈죄 인정 여부’였다. 당시 경찰은 “한 씨가 B 씨에게 ‘500만 원을 부치지 않으면 절도사실을 유포하겠다’고 말한 뒤부터 공갈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A 선수 부부가 한 씨에게 합의금 성격의 돈을 줬지만 그 이후에도 한 씨가 돈을 뜯어내기 위해 B 씨를 고소하고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것. 반면 구속 다음날 <일요신문>과 만난 한 씨는 “B 씨가 절도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랬다. A 선수가 사정사정해서 500만 원에 합의해준 뒤 협박한 사실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일요신문> 1208호 보도).
검찰은 한 씨가 B 씨를 공갈해 500만 원을 받았다며 명예훼손·협박·공갈죄로 기소했다. 애초부터 ‘500만 원’이 합의금의 성격이 아니라, 한 씨가 A 선수 부부를 협박해 돈을 뜯어냈다고 봤다. 검찰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한 씨는 B 씨에게 ‘내가 형(A 선수)이랑 형수(B 씨)와 친하게 지내면서 2000만~3000만 원 사용했다. 형수가 가방 가져간 것을 형한테도 알리고 기자들에게도 퍼트리겠다, 시끄러워지기 싫으면 오늘 7시까지 500만 원 입금해라, 그렇지 않으면 절도죄로 고소하고 기사화할 것’이라며 겁을 줬다”며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이에 대해 한 씨와 그의 변호인은 “B 씨를 협박해 500만 원을 갈취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1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2011년 11월경, 경찰 조사에서 절도사실을 인정한 B 씨가 한 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500만 원을 지급할 의사가 있었다고 봤다. 특히 2011년 10월 13일 한 씨가 B 씨를 절도죄로 고소한 직후, 한 씨와 B 씨의 통화 내용에 주목했다. 한 씨가 공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결정적 계기였다.
법원은 “통화에서 B 씨는 한 씨의 협박사실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당시 B 씨는 “전에 왔을 때 니(한 씨)가 분명히 얘기했을 때도 얼마 달라, 처음 얘기했을 때도 500만 원, 처음에 내가 집에 너네 둘(한 씨와 당시 여자친구) 불렀을 때 돈을 갖고 있었다”고 언급한 내용도 강조했다. B 씨가 한 씨에게 절도 피해품에 대한 보상비로 ‘500만 원’을 줄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
또한 B 씨가 이날 통화에서 “처음에 니가 전화했을 때 내가 처음부터 발뺌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 것, 너도 알고 있지”라고 말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B 씨가 절도 사실을 부인하자, 한 씨가 언론이나 B 씨에게 절도사건을 알리겠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즉 법원이 한 씨가 갈취할 의사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다.
한 씨의 요구액에 대한 B 씨의 엇갈린 진술도 문제였다. B 씨는 검찰 탄원서를 통해 “한 씨가 그동안 우리와 알고지내며 500만 원을 넘게 썼다며 돌려달라고 협박을 했다”고 했지만 경찰 조사에선 “한 씨가 2000만~3000만 원을 사용했다며 이걸 형한테 알리고 기사로 퍼뜨리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B 씨의) 절도 범행 피해액은 260만 원이다. (한 씨가) 합의금 내지 피해보상금 명목으로 500만 원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부당한 금액이 아니다. B 씨가 연예인이고 A 선수가 프로야구 선수였다고 해도 달리 보기 어렵다”며 “한 씨가 B 씨를 고소한 것은 한 씨와 A 선수 사이에 다툼이 생겼기 때문으로 볼 여지가 크다. B 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심 결과에 대해 검찰은 “한 씨가 B 씨를 공갈해 돈을 갈취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한 씨의 형이 너무 가볍다”며 즉각 항소했다. 한 씨도 징역 2년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2심 법원은 한 씨의 공갈죄에 대해 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한 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누범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고 공동상해 범행을 저질렀다. 협박과 명예훼손의 죄질도 매우 불량하다”고 원심을 확정했다.
<일요신문>은 최근 한 씨가 위증죄와 무고죄로 B 씨를 경찰에 고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 씨는 이미 경찰 조사를 마쳤다. 자료를 살펴본 뒤 B 씨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A 선수 부부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입장을 듣지 못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