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세대’의 변방 설움 한풀이
▲ 포르투갈의 축구영웅 루이스 피구(왼쪽)가 지난 4월17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로이터] | ||
포르투갈은 월드컵에 약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신예 북한 돌풍을 잠재우고 소련에게 준결승전에서 져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20년 만에 진출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차 리그에서 폴란드와 모로코에게 진 것이 월드컵 본선 2회의 기록이다. 형편없는 월드컵 성적이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다른 모습을 분명 보여 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른바 황금세대로 불리는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절정의 기량을 선뵐 준비가 돼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황금세대란 89년과 91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를 2연패한 주인공들인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 루이 코스타(AC 밀란), 주앙 핀투(스포르팅 리스본) 등을 일컫는 말로, 올해의 포르투갈팀은 이들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들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유로2000에서 4강까지 진출해 눈에 보이는 상승세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미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는 유럽예선을 통해 앞으로 몰고 올 파란을 예고했다. 유럽 축구의 강호 네덜란드, 아일랜드와 같은 조였던 포르투갈은 힘든 승부가 될 것이라는 주위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10경기 7승3무의 성적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특히 ‘토털사커’로 유럽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네덜란드도 콘세이상, 파울레타, 피구의 활약에 1승1무로 본선진출이 좌초됐다.
포르투갈 축구 아니 포르투갈은 그동안 유럽의 변방에서 맴돌아 왔다. 90년 이후 포르투갈의 경제는 호전되었으나 아직 유럽 전체의 수준에서 보면 내세울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포르투갈인들이 국가대항전에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포르투갈에도 벤피카, 스포르팅, 포르토 등 ‘빅3’으로 불리는 클럽이 있지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유명클럽들의 명성에는 크게 뒤처져 있다. 포르투갈 국민들은 내심 축구에서 스페인을 눌러버리기를 바라고 있다.
유로2000 경기 때는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연장 접전까지 갔다가 애매한 판정으로 핸들링 반칙에 의한 페널티킥패를 당하자 포르투갈 선수들은 “이제는 축구에 진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UEFA는 비즈니스를 위해 대국끼리의 결승을 바라고 있다. 포르투갈과 같은 작은 나라에는 관심도 없다”며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었다.
포르투갈이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유럽의 약소국으로 설움을 받아왔지만 2000년 이후 뚜렷이 상승세를 나타내며 다크호스로 떠오른 것은 유소년 축구에 대한 꾸준한 투자의 결과다.
지난 91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 대부분이 유로2000 멤버를 거쳐 이번 월드컵까지 계속해 뛰고 있다. 그 결과 엔트리 선수 중 18명이 29세 이상으로 연령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그만큼 팀워크에서는 다른 팀이 따를 수 없는 긴밀함이 있다. “선수들은 물론 의사와 지원요원 모두가 한가족처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안토니우 올리베이라 감독은 말한다. 이 팀은 여기에 신인들과의 적절한 조화도 이루어 냈다.
포르투갈의 강점은 탄탄한 미드필더진에서 시작된다. 80년대 이후 새로운 조류로 평가받는 ‘토털사커’에서 한발 더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대전제 아래 큰 무리없이 움직인다는 평가다. 코스타, 콘세이상, 피구 등 화려한 미드필더진의 플레이를 골로 승화시켜줄 핀투, 고메스 등 스트라이커도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다.
포르투갈은 한국과 함께 D조에 편성돼 있어 한번은 넘어야 할 상대다. 한국과 포르투갈을 비교할 때 객관적인 전력면에서는 포르투갈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 예선 마지막 경기가 될 한국과의 대전에서 포르투갈은 다음 16강전에 대비해 몸을 아끼며 뛰게 될 수도 있다.
지난 2월28일 핀란드와 가진 친선경기는 포르투갈의 약점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핀란드와의 경기에 무게를 두지 않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포르투갈은 특정선수에 대한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구의 부재가 공수에 허점으로 나타나면서 포르투갈 선수들은 번번이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했다.
포르투갈전에서 ‘피구만 막으면 된다’는 전략이 성공할지 의문이지만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앞둔 나라들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경기였다. 한국의 히딩크 감독은 “포르투갈은 나에게 비밀이 없다”고 말해 포르투갈전에서 한국팀의 선전에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포르투갈축구 말말말]
●“포르투갈과의 친선경기는 대단한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루이스 피구와 루이 코스타 같은 유명 선수들이 뛰고 있는 포르투갈 팀을 이번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생각해 왔다.” ─ 펠레 (브라질팀이 친선경기에서 약체팀과 경기를 갖는 것과 관련해)
●“포르투갈이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 ─ 게르하르트 마이어 독일축구협회 회장(독일대표팀이 시원찮은 성적을 내자 8강에만 올라도 대단한 일이라며)
●“포르투갈이 그렇게 잘하는 팀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FIFA에서 선정한 올해의 선수가 뛰고 있는 팀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 미국대표팀 브루스 아레나 감독(포르투갈 일간지 <헤코르드>와의 인터뷰에서 자국 팀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포르투갈에 대해서는 훤하다. 오히려 포르투갈과 맞붙게 된 것은 즐거운 일. 나에게는 비밀이 없는 팀이다.” ─ 거스 히딩크 감독(포르투갈 일간지 <헤코르드>와의 인터뷰에서)
●“핀란드가 어쩌다 요행으로 이겼지만 (포르투갈이 눈부신 성적과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 브라질 스콜라리 감독(포르투갈이 핀란드와의 A매치에서 1-4로 진 데 대해)
김세진 기자 blues3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