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면 후리기로 ‘도깨비’ 를 홀려라
▲ 토고팀의 전술핵 아데바요르(아스널)의 아프리카네이션스컵 경기 모습. 로이터/뉴시스 | ||
토고는 알려진 것이 없어 미지의 나라로 불렸다. 월드컵 출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와도 경기를 치른 바가 없다.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토고가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국가대항전을 치른 것은 FIFA에 가입한 1962년 이후 40여 년 동안 네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도깨비 팀’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은둔에서 벗어나 베일이 하나둘 벗겨지자 온통 잡음 투성이다. 토고는 지난 1월 2006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 출전했다. 우리로서는 토고를 파헤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 대한축구협회는 기술위원을 급파했고 아드보카트 감독도 개인적인 인맥을 활용해 분석관을 대회가 열린 이집트에 보냈다. 정체를 드러낸 토고는 혼란 그 자체였다. 대회에 나선 토고 선수들은 출전 수당을 놓고 해당 축구협회와 마찰을 빚었다. 대회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두는 등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접점 없이 대립하다 개막 직전 극적으로 마찰을 봉합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토고 축구의 영웅 엠마누엘 아데바요르가 전술 문제로 감독과 불화를 일으키며 출전을 거부했다. 잇단 내홍으로 몸살을 앓은 토고는 결국 3전 전패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스테판 케시 감독은 선수단 마찰과 성적 부진으로 낙마해야 했고 2006월드컵을 4개월 앞두고 부랴부랴 독일 출신의 오토 피스터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하는 등 대혼란을 겪었다. 우리로선 반가운 일일 수밖에…. 어쨌든 토고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또 토고를 만만히 볼 수만은 없다. 아프리카 지역예선에서 2002월드컵 8강 돌풍의 주역 세네갈을 무너뜨리고 독일행 티켓을 거머쥔 나라가 토고다. 세네갈은 2002월드컵 개막전에서 우승 후보 프랑스를 물리친 주인공이다.
축구의 나라 잉글랜드 명문 아스널에서 뛰는 아데바요르는 지역 예선에서 11골을 폭발시키며 아프리카 득점왕에 오른 괴물 골잡이다. 190cm가 넘는 장신으로 공중볼 장악에 탁월한 경쟁력을 보이면서도 유연하고 힘이 넘쳐 가공할 만한 골 결정력을 과시한다.
문제는 토고에 아데바요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정환이 프랑스 메스에서 뛸 때 동료였던 골키퍼 아가사와 미드필더 쉐리프 투레 마망을 비롯해 수비수 장장 아테 오데이(벨기에 로케렌) 수비형 미드필더 아지아워누(스위스 영보이스) 중앙 미드필더 무스타파 살리푸(프랑스 스타드 브레스트) 좌우 측면 공격수 카델 쿠바자(프랑스 귀잉강)와 세나야 주니오르(스위스 주벤투스) 등 주전 대다수가 유럽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잠시 주춤했다고 얕잡아 보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토고의 전술적 특징은 한마디로 ‘아데바요르의 원맨팀’이라 표현한다. 특출한 아데바요르의 기량을 활용하는 공격 형태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수비 진영에서 전방으로 길게 연결해주면 아데바요르가 잡아 골을 결정짓는 형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아데바요르의 움직임과 슈팅이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라 예측하고 있어도 막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아데바요르가 무서운 점은 스스로 골을 잡아내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동료에게 골 기회를 내주는 어시스트에도 능하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수비가 몰리면 ‘토고의 박지성’으로 통하는 세나야 주니오르나 발 빠른 윙포워드 카델 쿠바자에게 연결, 골을 합작한다.
토고가 강하기만 하다고? 아니다. 약점 또한 많은 토고다. 특히 수비가 허술하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아 소집 훈련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아프리카 팀들이 대부분 수비가 약한 데다 토고의 방어선은 개중에서도 하위 레벨에 속한다. 특히 좌우 측면 방어가 허약하다. 박지성 이천수 박주영 설기현 등 측면 돌파가 뛰어난 우리의 공격수들이 능히 뚫어낼 수 있는 약한 고리라 할 수 있다.
피스터 감독이 월드컵 개막을 4개월 앞두고 부임,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조직력이 흐트러져 있다는 점도 토고의 약점이다. 사실 좀 황당하기까지 한 것은 피스터 감독이 부임한 이후 한 차례도 선수들을 직접 보거나 테스트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혼란스런 분위기 탓에 본선 진출국 대부분이 A매치 평가전을 치른 지난 3월 1일, 토고는 하릴없이 다른 나라들의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때문에 피스터 감독은 대표팀을 소집, 선수들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최적의 조합을 짤 수 있는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피스터 감독은 FIFA에 최종 엔트리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인 5월15일 하루 전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표팀 강화 일정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한 달여만에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지는 미지수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