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이름 앞세운 ‘검은 작전’ 들통
에이전트사 A는 독일 월드컵 이후 가장 주가가 뛸 것으로 짐작된 축구 선수 B에게 월드컵 전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적과 관련된 에이전트의 권리는 B가 이미 소속된 C 에이전트사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국내 매니지먼트만을 담당하겠다는 내용의 제안이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프러포즈였다면 B가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장 관심을 모은 게 그 속에 포함된 계약금 액수. A사는 90일 안에 3억 원을 주겠다며 계약할 때 먼저 1억 원을 건네겠다는 세부 조건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었던 B는 계약에 어느 정도 오케이를 했고 몇 차례 구체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과거 에이전트와의 계약 문제로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었던 B는 이번만큼은 완벽한 상황에서 A사와 계약 맺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내건 조건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 먼저 주기로 한 1억 원을 현장에서 받고 싶다고 했다.
B의 얘기를 들은 A사는 고민에 빠졌다. 계약을 맺기 위해 B에게 거액 3억 원을 제시하며 큰 소리를 뻥뻥쳤지만 실제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돈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사는 어떻게 해서 B에게 3억 원의 돈을 제시하며 계약을 맺으려 했던 것일까. 취재 결과, A사는 B와의 계약서를 토대로 코스닥에 상장된 D 벤처 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으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A사는 이미 소속돼 있는 유명 축구 선수와 새로 영입할 B의 계약서를 토대로 D사로부터 투자금을 받고 사업을 벌일 예정이었다. D사로선 증시에 새로운 사업 영역을 공개하면서 스포츠 마케팅 계획을 밝히고 유명 선수 이름을 자연스레 거론하면서 주가를 올린다는 복안이었던 것.
그러나 선수가 계약서 작성과 동시에 돈을 달라고 하자 미리 돈을 마련할 수 없었던 A사로선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선수 B에게 계약서를 먼저 써주면 돈을 주겠다고 매달리다가 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락을 뚝 끊었다고 한다.
B 선수는 자주 만나는 지인에게 “선수의 이름을 이용해 장사를 벌이려 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면서 “종종 유명 연예인들이 주가 조작에 연루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그런 일을 당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