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전 경험 사러 가는 겁니다”
▲ 지난 2003년 12월 빅리그 진출 희망을 잠시 접은 이승엽이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기자회견장 구석에서 흐느끼던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 ||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설은 지난주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국내 언론의 관심사였다. 구체적인 구단 이름까지 거론되며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이적 문제가 불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리한 장마와 함께 아버지 이춘광 씨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
승엽이가 일본에 진출하기 전 먼저 미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가장 큰 이유는 ‘도전 정신’이었다. 프로 9년 동안 최연소 300 홈런, 아시아 홈런 신기록,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는 등 선수 시절 이룰 수 있는 기록과 경험을 죄다 맛본 승엽이는 갑자기 목표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미국에서 콜이 있었다. LA 다저스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승엽이는 2년 선배인 박찬호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힘들게 미국 무대를 개척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자기도 기회가 된다면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난 반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고 굳이 거기까지 가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승엽이의 의지를 꺾지는 못할 거라 예상했다.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며느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승엽이는 비참한 심정이 돼 돌아왔다. 좀 더 민주적이고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고 싶었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조건을 제시받고 문전박대를 당하다시피해서 귀국한 것이다. 연봉도 그렇고 아시아 홈런왕이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내용 등 어느 것 하나 승엽이를 대우해주는 조건이 없었다.
난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승엽이가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하면서도 내심 삼성에 잔류하기를 바랐다.
일본은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선택이었다. 솔직히 지바 롯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행을 선언한 것이다. 승엽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한 끝에 일본을 가기로 한 데는 발렌타인 감독의 영향이 가장 컸다. 미국행을 꿈꾸다 물거품이 됐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을 지낸 발렌타인이 ‘러브콜’을 보내니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 더욱이 미국에서의 냉대에 상처를 받은 승엽이는 지바 롯데의 끈질긴 구애와 적극성에 감동까지 받았다.
만약 지바 롯데 감독이 일본인이었다면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인 감독 밑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발렌타인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한몫했다.
마침내 승엽이는 나랑 깊이 상의도 하지 않고 일본 진출을 발표해 버렸다. 가지 말라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유와 안락함보다는 도전과 고생을 선택한 것이다. 승엽이는 당시 날 이렇게 날 설득했다.
“아버지,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전 경험을 사러가는 것입니다.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경험만 하는 것도 제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주시고 편히 보내주세요.”
그러다 지바 롯데에서 ‘믿었던’ 감독이 다른 용병들을 더 많이 배려해주면서 승엽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충격의 2군행에다 주전보다는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훨씬 많았다. 그때 친정팀 삼성에서 다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난 승엽이에게 직접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삼성 관계자의 얘길 들어보니까 승엽이가 ‘버틸 때까지 버티겠다’며 거절했다고 하더라. 아시아 홈런왕이 됐을 때도 대견하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그때처럼 승엽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