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 아내 둔 그는 ‘진짜 행운아’
▲ 울버햄프턴 시절 설기현 가족. 현재는 딸이 한 명 더 늘어나 네 식구가 됐다. 설기현의 지금 성공은 말없이 내조해준 아내 윤미 씨의 덕이 크다. | ||
런던 패딩턴역에서 기차 타고 25분을 가면 레딩역에 도착한다. 다시 레딩역에서 택시를 갈아 타고 20분이 걸려 도착한 설기현의 집은 아담한 전원주택이었다. 택시 기사는 레딩에서도 아주 좋은 동네라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며 구경했다.
“손님이 와서 역에 못나갔어요.” 스타가 되면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참 예의바르다. 그래서 설기현의 성공에 팬들이 더욱 환호하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울버햄프턴에 있던 설기현의 집을 방문했던 기억을 되살려보니 집이 좀 작아진 듯했다. 설기현은 “그때는 정원이 너무 넓었는데 이제는 아담한 정원이라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긴 울버햄프턴의 정원은 공원에 가까울 정도로 넓었으니 관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1층에 있는 거실에 들어가니 2002년에 태어난 아들 인웅이는 어느새 다섯 살 꼬마가 돼 TV 만화 영화(물론 영어 방송)에 빠져있었다. 또 10월에 돌이 되는 둘째 여진이는 아장아장 걸으며 재롱이 한창이었다. 인웅이 출산 기사를 작성했던 기억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했다.
10월 2일(한국시간) 웨스트 햄전을 앞둔 설기현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두 아이가 웃는 소리에 피로를 날려버리는 5년차 아빠 설기현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직 아이가 없는 필자로서는 빨리 현실로 이루고 싶은 꿈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 인웅이 잘 생기지 않았어요?”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는 설기현도 어쩔 수 없는 보통 아빠였다. 커피를 내온 아내 윤미 씨는 두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씬하고 청순한 외모를 자랑했다.
구면인 윤미 씨에게 “아니 어떻게 살이 안 쪄요”고 묻자 “아니에요. 살찐 거예요”라고 하는데 특유의 수줍은 미소는 여전했다. 차가 없으면 아예 이동이 불가능한 시골에 살고 있어 “심심하지 않으세요?”라고 재차 묻자 “아이들 때문에 정신 없어요. 정말 심심해졌으면 좋겠어요”라며 웃었다. 설기현의 내조에만 온 신경을 다 쓰는 윤미 씨는 설기현의 어머니와 더불어 프리미어리거 설기현을 만든 위대한 두 여성 중 한 명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설기현의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친 순애보의 여주인공 같은 그녀다.
둘이 소파에 앉아 차 한 잔씩 마시며 옛날 취재 중 생겼던 일을 떠올리다보니 선수와 기자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얘기가 미쳤다. 못할 때는 왜 못하는 지에 대해 써야 하는 기자의 숙명을 설명하자 설기현은 그래도 격려를 담은 기사를 보면 더 힘이 난다며 무조건 ‘까대는’ 기사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최근 관심의 정점에 서있는 설기현은 기자들로부터 전화를 부쩍 많이 받고 있다. “인터뷰인 줄 모르고 전화받았다가 다음날 보면 기사가 나와 있어요”라고 말하길래 “기자가 잠 안자고 이 곳 저녁시간 맞추느라 새벽에 전화했으면 인터뷰인 줄 알아야지”라고 응수했다. 마치 선수 대표, 기자 대표가 만나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우선 기자를 피하고 보는 선수들에 비해 설기현은 그래도 기자들에게 고마운 취재원이다. 남을 배려하고 거절 못하는 성격이지만 반면에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끄집어 내고 부탁하는 치밀함도 엿보인다. 계속되는 대화 끝에 설기현은 기자란 직업에 대해 이런 이해를 나타냈다.
▲ AP/연합뉴스 | ||
과연 필자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지 반성하고 있지만 일부 축구선수들이 기자라면 무조건 피하고보는 요즘의 축구계 현실이 떠올랐다.
한 시간여 얘기를 하다보니 벌써 낮 12시가 넘었다. 설기현은 인웅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일어났다. 인웅이와 함께 차를 타고 근처 유치원으로 향했다. 설기현은 인웅이가 교실에서 노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평상시 훈련이나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꼭 인웅이를 데려다 준다고 한다. 또래보다 덩치가 큰 인웅이는 축구를 좋아한다. 여차하면 축구선수로 대를 이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 짓는 설기현한테서 아버지의 향기가 묻어났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에둘러 “탄광촌이 기억나느냐”고만 물어보니까 “그럼요”라고 말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돼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설기현에게 아버지가 보고싶은 지를 묻는 어리석은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대신 지난주 <일요신문>의 ‘부모가 쓰는 별들의 탄생신화’ 설기현 편에서 자료 사진으로 쓰인 사진에 대해 물어봤다. 93년 강릉 시내를 행진하는 중학생 설기현의 비쩍 마른 모습이 기자의 시선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다.
“(사진 보니까) 엄청 말랐던데요?” “그때는 영양실조에 걸려서 살찔 여유가 없었어요.” 영양 실조 이야기를 참 덤덤하게도 말한다.
아직 30세가 되지 않았지만 가끔 무언가를 초월한 듯한 설기현의 내공의 깊이는 상당하다. 고생해본 사람이 역설적으로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설기현에게는 있다.
남자 둘이 하는 데이트, 낙엽이 떨어지는 한적한 시골길을 차로 달리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레딩은 런던이 가지지 못한 한가로움이 물씬 풍기는 도시다.
6년 전 담당 기자를 맡으면서 설기현과 함께 이역만리 영국 땅의 레딩을 밟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평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만약 2000년에 벨기에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 K리그에서 뛰고 있을 것 같아요?” “아뇨. 아마 J리그에 있을 거예요. 돈을 벌고 싶었거든요”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돈을 좇아 다닌다고 돈이 벌리는 게 아니란 걸 안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잠깐의 드라이브를 마치고 레딩역 앞에서 웨스트 햄전 잘 치르고 한국도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런던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설기현이 정신적으로도 최정상급의 선수로 성장했음에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
영국 런던=변현명 축구전문리포터 blog.naver.com/ddaz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