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집착 ‘역주행’ 두 이씨 아른아른
▲ 지난 7월 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으로 당선된 강재섭 후보(오른쪽)가 꽃다발을 받는 도중 2위에 머무른 이재오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화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더구나 소장파들은 ‘민심과 당심 사이의 거리’에 우려를 표시하고 ‘영남당’ ‘도로 민정당’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후유증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친 박근혜 계보와 친 이명박 세력 간의 갈등이 이미 화해와 통합의 접점을 넘어선 게 아니냐는 데 있다. 이재오 의원은 경선 뒤 박근혜 전 대표를 강하게 비난하며 최고위원회의를 보이콧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세 불리를 절감하고 먼저 뛰쳐나갈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도 나온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남긴 후유증을 진단해본다.
한나라당의 A 의원은 7·11 전당대회를 불과 이틀 앞둔 지난 9일 밤,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A 의원은 박 전 대표와도 친분이 있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이재오 의원을 ‘앞장서서’ 지지했던 의원 중의 한 명이었다.
“분위기가 강재섭 의원에게로 넘어갔다. (이재오 의원을 도와주는 것에서) 손을 떼라. 이제는 너무 늦었다.”
그 얘기를 들은 A 의원은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박 전 대표의 측근에게 ‘그건 절대 안 된다. 나도 박 전 대표와 친분이 깊지만 이재오 의원을 지지하는 것은 시대정신과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대권을 잡으려면 한때 적이었던 이재오 의원을 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권 경쟁에서도 불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A 의원은 박 전 대표 측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자에게 “그쪽에서 그렇게 자신 있게 분위기가 넘어갔다고 주장하는 배경을 곰곰 생각해보니 ‘박 전 대표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이재오 의원 당선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7·11 전당대회는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낳았지만 그 중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직접 선거운동에 개입하면서 대권후보들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된 점이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재오 의원 측에서는 박 전 대표가 선거 막판에 직접 ‘박심’을 언급하고 다녀 그것이 패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경선이 끝난 뒤 “내가 이런 지도부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저쪽(박근혜쪽)이 다 공작해 대리전 냄새를 풍김으로써 ‘박심’을 자극하고, 박근혜 전 대표도 노골적으로 가담한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다음은 이 의원 측이 전하는 또 다른 박 전 대표의 경선 개입 의혹 부분.
이재오 의원의 측근 B 씨는 전당대회 행사장에 들어서면서 ‘박-이’ 간의 대리전으로 현장 분위기가 과열될까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두 거물의 자리가 따로 떨어져 있게 되면 양측간의 연호 대결로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으니 같이 앉게 하라’고 이재오 의원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즉각 허태열 사무총장에게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자리를 나란히 배치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전당대회장의 박근혜 전 대표 | ||
그런데 박 전 대표 측은 이명박 전 시장이 먼저 ‘대리전’의 씨앗을 뿌렸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 전당대회 10여 일 전 ‘개혁인사’ 운운하며 먼저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여기에 박 전 대표 측을 자극했던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 강재섭-이재오 두 후보는 대구 경북지역 유세에 나섰다. 그런데 당시 현장 분위기가 강 의원의 텃밭이었음에도 이재오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고 연호도 훨씬 컸다고 한다. 그것을 본 강 의원 측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가난한 이재오 의원을 위해) 돈을 풀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모일 리가 없다. 우리도 뭔가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첫 스타트는 유승민 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유 의원은 선거 이틀 전인 지난 7월 9일 한 언론에 “(이 전 서울시장이 당 지도부 경선에 나선 이재오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측근들의 보고를 듣고) 박 전 대표가 몹시 격앙돼 있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반응’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공개 경고의 성격보다 강재섭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우회 전술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 결과는 친박 세력의 총 결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친박-친이 의원들 간의 반목은 생각보다 매우 깊은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패배자인 이 전 시장 그룹 측은 “이번 경선 결과를 수용한다. 하지만 막판 공작정치는 그 도를 넘었다고 본다. 경선장에 대의원 참여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점도 대의원 동원 의혹을 살 수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지도부의 보수색채가 당의 수구 이미지를 고착화시킬까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친이 세력은 “이번 전당대회 결과를 통해 보면 내년 대선 후보 경선도 그 결과가 뻔할 것”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이 전 시장의 탈당 가능성이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지금 같은 박 전 대표 일변도의 분위기라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박근혜 대세론을 뒤집을 만한 모멘텀을 찾기 힘들다. 이 전 시장측은 ‘앉아서 지느냐’ 아니면 ‘경선 전 탈당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느냐’고 하는 갈등 사이에서 복잡한 대권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 전당대회장의 이명박 전 시장 | ||
그래서 나온 ‘대안’은 이 전 시장이 경선 전에 당을 뛰쳐나가 정계개편의 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과 ‘화학적 결합’을 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꺼져 가는 정권과 다시 합치는 순간 이명박 전 시장의 인기는 바로 거품이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 시장이 그려볼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한나라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이 탈당한다면 그가 정계개편의 주축이 될 수도 있다. 이 전 시장이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건신당 등의 제 세력과 후보 단일화 논의를 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게 되면 차기 대선 구도는 박근혜 전 대표로 대변되는 친 한나라당 세력과 반 한나라당 단일 후보의 양자 대결로 압축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전 시장에게는 앉아서 죽는 경우보다 훨씬 가능성이 높은 베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은 “무책임하게 당을 쪼개고 나서는 순간 국민들의 저항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끊임없는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편 이번 전당대회가 박근혜 대세론을 굳히는 계기도 되었다는 시각도 커지고 있다. 부산의 한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적어도 10~ 15%가량의 대의원을 움직였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재선의원도 “전당대회를 통해 박 전 대표가 움직이면 어떤 상대세력도 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래서 때 이른 ‘박근혜 대세론’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라도 사실 그의 경쟁력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5·31 지방선거, 피습사건, 7·11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의원들이 확실하게 마음을 정한 것 같다. 대선 후보 경선이 다가올수록 대세론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다. 차기 정권에서 입지를 확보하고 18대 총선에서 공천도 받으려면 일찍 줄을 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권과 대권을 장악해 ‘이회창 대세론’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가 집중적인 공격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눈치 보기만 할 뿐 내부 개혁의 목소리도 쉽게 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은 박 전 대표가 ‘제2의 이회창’이 될 수도 있음을 예상케 해주는 대목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당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표를 뽑는 것이 아니라 대권 후보를 뽑는 전초전으로 변질되어 버려 양측간의 감정 싸움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6개월 동안 박 전 대표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지만 경선장에서 ‘치욕’을 당했던 이재오 최고위원의 배신감은 컸고, 정치적 신의는 헌신짝이 돼버렸다. 이명박 전 시장도 세 만회를 위해 ‘뛰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한계만 확인하고 탈당설만 나도는 꼴이 돼버렸다. 박 전 대표도 대세론의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 기상도가 쾌청만은 아님을 이번 전당대회는 분명히 보여 준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