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준비해놨거든요” 기현의 ‘정’
▲ 한국 취재진의 설기현 이영표 인터뷰가 원천봉쇄되면서 ‘방랑기’도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게 됐다. 사진은 시즌 초반 설기현 인터뷰. | ||
아무래도 설기현을 제일 먼저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선수 3명을 위주로 취재하려던 계획은 초반 박지성의 부상과 이영표의 벤치행으로 인해 차질을 빚었다. 의지(?)할 곳은 설기현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울버햄프턴에서 그리 좋지 못했던 설기현이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에 맹활약을 보일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9월 16일 셰필드 원정경기를 앞둔 기자는 맨체스터에 머물고 있었다. 9월 14일 왼쪽 발목 인대 수술을 받은 박지성을 취재하고 난 뒤였다.
설기현은 전화통화에서 “셰필드까지 너무 멀어 기자들이 안 올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직접 갈 테니 첫 골이라도 넣어달라고 말하자 설기현은 “그럼 제가 가족 티켓으로 신청해 놓을 테니 돈쓰지 말라”며 선수에게 나오는 가족 티켓을 주겠다고 했다. 경기 당일 기차를 타고 셰필드에 도착해 경기장을 찾았다. 설기현은 기자의 이름으로 가족 티켓을 신청해 놓았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또 골까지 터트려줘 먼 길 찾아간 한국 취재진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줬다. 이날 셰필드에는 10명 가까운 한국 취재진이 몰려들어 설기현의 걱정을 덜어줬다.
▲ 설기현 유니폼을 입은 영국 꼬마 팬 | ||
설기현의 희망은 공부였다. 유럽 선수들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TV해설이나 자서전 등을 쓰는데 한국 선수들은 은퇴 후 생활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모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그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에서 뛰고 있는 서정원 선배는 참으로 좋은 귀감이 되는 선배라고 말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설기현에게 매 경기 끝나고 일기 형식의 관전평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개인 기록인 동시에 한국 축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피곤하더라도 꼭 그렇게 하겠다는 설기현의 말을 듣고 10년 뒤 설기현의 얼굴을 TV 해설가로 만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또 한 명의 고마운 취재원은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 씨다. 멀리까지 와서 고생한다며 맨체스터 시내 한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전 에이전시와의 소송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기자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돈 욕심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정 부분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박 씨 입장에선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맞다. 일을 하다 보니 서툴렀다”고 인정했다. 박 씨는 또한 “기자들이 무조건 편들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잘못이 있으면 따끔하게 혼이 나는 게 맞다”고 나름의 언론관을 피력했다.
▲ 박지성 부친 박성종 씨. | ||
아쉬움이 남는 선수는 이영표다. 기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로 유명한 이영표는 AS로마 이적 무산 후 인터뷰와는 ‘결별’을 선언했다. 몇 차례 구단을 통해 만남을 희망했지만 정중한 거절만이 되돌아왔다. 이영표가 하루 빨리 자신의 위치를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런던=변현명 축구전문리포터 blog.naver.com/ddaz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