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 투자하면 누구나 유령회사 뚝딱!”
‘역외 탈세’는 기본적으로 해외로 재산과 소득을 빼돌려 탈세하는 방법을 말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역외 탈세’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지 알아봤다.
내부자료 1150만 건이 유출된 파나마 최대 법률 회사 ‘모색 폰세카’ 홈페이지.
‘세금 천국(Tax Haven)’이란 말 그대로 세금이 완전히 면제되거나 또는 세율이 현저히 낮은 나라를 뜻하기 때문에 조세를 회피하려는 기업들이나 부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다.
한 익명의 제보자가 “정의를 원한다”며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에 전달한 ‘모색 폰세카’의 내부 문서에는 1150만 건에 달하는 기업과 부자들의 탈세 기록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이 내부 자료는 1977~2015년까지 작성된 것으로, 21만 4000개가 넘는 유령회사들과 관련된 기록들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4위 규모이자 파나마 최대 법률회사인 ‘모색 폰세카’는 2005년 무기명 주식과 관련된 법률이 강화되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파나마로 본사를 옮겼으며, 현재 중국, 스위스, 키프로스, 버진아일랜드 등 전세계 42개국에 600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30만 개 이상의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주로 기업 및 개인에게 조세 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돕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이밖에 주요 서비스로는 역외 탈세, 돈세탁 등 역외 금융서비스와 함께 자산 관리 업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에 대해 ‘모섹 폰세카’의 공동 설립자인 라몬 폰세카는 “우리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또 조장하지도 않았다”며 반박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는 고객을 대신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줄 뿐 고객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말처럼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 즉 유령회사를 설립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또한 엄밀히 따지면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하는 것 역시 불법은 아니다. 만일 목적이 합법적일 경우, 가령 범죄집단이나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해외 계좌에 자산을 보관하는 것은 합법이다. 문제가 되는 경우는 단지 명백하게 탈세, 편법 증여, 돈세탁, 정치자금 은닉 등 불법적인 행위에 악용될 때다. 하지만 사실 합법과 불법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법을 합법인 양 포장해서 눈속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역외 탈세는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 부자들은 어떻게 조세를 피해 자산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는 걸까. 전세계 부의 약 8%가 역외에 유치되어 있다는 <인디펜던트>의 보도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부가 불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먼저 페이퍼 컴퍼니란 무엇인지 살펴보자. 페이퍼 컴퍼니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일 뿐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유령회사다. 외관상으로는 엄연히 합법적이지만 껍데기만 있을 뿐 속은 텅 비어있기 때문에 영어로는 ‘셸 컴퍼니(shell company)’, 혹은 주소만 있기 때문에 ‘우편함 회사(letterbox company)’라고도 불린다. 이때 회사 주소는 조세 피난처의 주소를 이용하게 된다. 때문에 가령 조세 피난처 가운데 하나인 케이먼 제도의 한 5층 건물에는 1만 2000개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는 변호사나 회계사 등 중개인을 통해 인수할 수 있으며, 설립 비용 또한 적게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2000달러(약 230만 원)만 있으면 보통 회사 설립이 가능하며, 사고파는 것 역시 국제선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만큼 간단하다.
다음은 저명한 페이퍼 컴퍼니 전문가이자 호주 그리피스대학의 제이슨 셔먼 교수가 말하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방법이다. 10분만 투자하면 누구나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할 수 있다고 셔먼 교수는 말한다.
먼저 구글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검색한 후 페이퍼 컴퍼니 관련 서비스업체를 선택한다. 그 다음에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수십 곳의 조세 도피처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한다. 현재 전세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조세 도피처로는 케이먼 제도, 파나마, 사모아, 세이셸,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 60여 곳이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수 있다. 셔면 교수는 “신분증 없이 미국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미국은 자국민들의 역외 탈세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지만 반대로 미국 금융기관들이 외국인들의 조세 회피를 돕는 것에 대해서는 훨씬 관대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셔먼 교수는 가장 인기 있는 조세 도피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라고 말했다. 이유는 페이퍼 컴퍼니 설립 비용이 1500달러(약 170만 원) 정도로 다 법인세율적은 편인 데 또한 평균 1.9%로 낮기 때문이다.
천국을 선택했으면 이제 법인회사, 신탁회사, 사립재단, 비영리 단체 등 다양한 형태의 회사를 설립할 차례다. 파나마를 비롯한 조세 도피처에서는 늦어도 3일 안에 설립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회사명을 지은 후 등록 신청을 하고 허가가 나는 모든 과정이 신속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가령 서류에 기입하는 항목은 회사명, 주주명, 자본금 설정 등 매우 단순하며, 이때 대부분 주주 신원은 확인도 하지 않는다. 최소 설립 자본금 역시 따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단돈 1달러만 넣어두어도 상관이 없다. 이렇게 서류작성이 완료되면 즉시 회사가 설립된다.
이때 페이퍼 컴퍼니의 실소유자는 뒤에 숨어있기 마련이다. 서류상의 소유자는 페이퍼 컴퍼니 설립을 중개한 변호사나 회계사, 심지어 청소부 등 명의만 빌려온 대리인들이며, 이들 대리인들에게 회사에 대한 실제 권한은 없다.
그럼 이렇게 세워진 유령회사를 통해 어떻게 탈세를 하고, 어떻게 수익을 얻는 걸까. 여기에는 그야말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방법이 존재한다. 먼저 거액의 현금을 쉽게 빼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기명 주식이나 채권을 이용하는 것이다.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고 증서를 가진 사람이 주인인 무기명 주식 및 채권은 쉽게 이동이 가능하며, 또한 만일의 경우 소유권을 부인할 때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 <CBC뉴스>가 탈세 목적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고문회사인 ‘프레비스 AG’의 관리자를 상대로 한 몰래카메라를 통해 폭로한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프랑코 로시라는 이름의 이 관계자는 자신의 방법을 이용하면 실제로 현금이 국경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금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가 소개한 방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짝’이 필요하다. 가령 캐나다에서의 과세를 피해 스위스로 현금을 숨기고 싶어하는 A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럼 이때 필요한 ‘짝’은 스위스 은행에 숨겨놓은 돈을 다시 캐나다로 옮겨오길 희망하는 B가 된다.
이런 경우 B는 자신의 스위스 은행 계좌에서 일정액을 A가 새로 개설한 스위스 계좌로 송금한다. 그럼 A는 자신의 캐나다 계좌에서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B의 캐나다 계좌로 입금한다. 이렇게 할 경우 실제 돈이 국경을 오가지 않은 셈이다. 이때 드는 비용은 중개인에게 지불하는 수수료 명목의 5%뿐이다. 로시는 “아주 쉬운 방법입니다. 게다가 100% 안전하죠”라고 말했다.
이에 관해 <CBC뉴스>는 전문가에게 과연 이런 방법이 합법인지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캐나다와 스위스 양쪽 모두에서 불법 행위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불법 행위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더욱이 발각된다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금액이 오갔는지 정확히 밝혀낼 수도 없다.
영국의 <가디언>은 돈을 해외로 옮기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이전가격설정’을 예로 들었다. 다국적기업이 주로 이용하는 이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령 에콰도르에서 수확한 바나나를 프랑스 슈퍼마켓에 판매하는 다국적기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기업이 에콰도르에서 바나나를 수확한 후 컨테이너에 실어 운송하는 작업에 드는 총비용은 1000달러다. 그리고 이렇게 운송한 바나나를 프랑스 슈퍼마켓에는 3000달러에 판매한다.
그럼 이때 발생하는 2000달러의 수익에 대해 과세를 하는 나라는 과연 어디일까? 에콰도르일까, 아니면 프랑스일까? 정답은 ‘다국적기업의 담당 회계사들이 정하는 곳’이라고 <가디언>은 말했다. 다시 말해 회계사들 마음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탈세를 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다국적기업은 세 곳에 각각 회사를 설립한다. 이를테면 ‘에콰도르회사(EuadorCo)’ ‘조세천국회사(HavenCo)’ ‘프랑스회사(FraceCo)’ 등 세 곳이다. 이때 조세회피천국은 법인세율이 0%인 나라여야 한다.
‘에콰도르회사’는 바나나를 실은 컨테이너를 ‘조세천국회사’에 1000달러에 판매하고, ‘조세천국회사’는 ‘프랑스회사’에 이 바나나 컨테이너를 3000달러에 판매한다. 이때 바나나 자체는 실제 ‘조세천국회사’가 있는 나라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다. 그저 서류상으로만 왔다갔다할 뿐이다.
이때 ‘에콰도르회사‘는 바나나를 수확해서 컨테이너에 싣는 데 1000달러의 비용이 들었지만 1000달러에 바나나를 ‘조세천국회사’에 판매했기 때문에 이윤은 0이 된다. 때문에 내야 할 세금도 없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프랑스회사’는 바나나를 3000달러에 구매해서 슈퍼마켓에 3000달러에 넘겼기 때문에 역시 이윤이 남지 않았으므로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이때 열쇠는 ‘조세천국회사’에 있다. ‘조세천국회사’는 바나나 컨테이너를 1000달러에 구매해서 슈퍼마켓에 3000달러에 판매했기 때문에 2000달러의 이윤을 남겼다. 하지만 조세천국나라에는 법인세 자체가 없기 때문에 역시 징수되는 세금은 없다. 결과적으로는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고 2000달러의 이윤을 고스란히 챙기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탈세 방법은 현실에서는 그리 간단하고 쉬운 것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이런 식의 탈세 행위를 추적하기 위해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세 전문 변호사들은 정부의 눈을 피해 또 다른 방법들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쫓고 쫓기는 고양이와 쥐처럼 둘 사이의 추격적은 계속되고 있다고 <가디언>은 말했다.
이밖에도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방법으로는 페이퍼 컴퍼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후 막대한 금액의 합의금을 챙기거나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