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테스트가 삶을 바꾸다
▲ 지난 14일 야구국가대표팀 훈련에 전념하는 류현진. 오른쪽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유소년야구대회 참가 모습. 연합뉴스 | ||
대입수학능력 시험이 있던 날 류현진의 아버지 류재천 씨는 휴대폰을 끄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아들 류현진을 수능 시험장에 데려다 주고 집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류 씨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본다.
수능 시험을 보기 위해 전날 부산에서 올라온 현진이는 표정이 밝지 않았다. 시험에 대한 부담 때문인 줄 알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애써 여유를 보였는데 현진이의 반응이 황당했다. “아빠, 정말 걱정이에요. 시험이 아침 8시 40분부터 시작되잖아요. 그런데 오후 5시 넘어서까지 어떻게 책상에 앉아 있죠?”
어쩌면 솔직한 표현인 지도 모른다. 어린시절부터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단 밖에서 치고 달리는 운동만 했던 현진이로선 8시간 남짓의 시험 시간이 ‘감옥 체험’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프로팀에 입단하면서 대학 진학은 생각지도 못했다. 졸업하기 전 이미 한화의 일본 마무리 전지훈련에 합류했고 어차피 현진이의 최종 목표는 프로팀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같은 팀이자 동기인 유원상이 일본 전지훈련 중 일부러 귀국해서 수능 시험을 치르고 일본으로 복귀하자 현진이가 자극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올해 입시를 준비했는데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에 파묻혀 있는 수험생들에 비해 현진이의 성적은 보잘것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학문을 넘어 보겠다고 시즌 내내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린 현진이를 보면서 내심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호에 밝힌 바 있지만 어린 시절 현진이에게 야구는 ‘놀이’였다. 아버지와 함께 가는 야구장은 ‘소풍’이나 마찬가지라 야구 광팬인 나와 현진이는 유독 야구장에서만 부자간의 절묘한 호흡을 자랑했다.
집 앞마당에 마련한 미니 야구장은 옥상에 라이트를 설치하면서 제법 그럴 듯한 모양새를 갖췄다. 야간 훈련을 할 때 라이트를 켜면 동대문야구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현진이한테는 세 살 위의 형 현수가 있다. 그러나 같은 부모한테서 태어난 형제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외모가 딴판이다. 현수가 곱상하고 날씬한 외모의 호남형 스타일이라면 현진이는 울퉁불퉁하면서도 골격이 크고 두툼한 편이다. 식성도 완전 딴판이다. 현수가 해산물을 좋아하는 반면 현진이는 육식을 엄청 사랑한다. 먹는 게 틀리다보니 성장 과정의 모습이 틀렸고 형은 모델이나 연예인 쪽에 목표를 둔 반면 현진이는 오로지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기로 한 삶을 택했다.
야구를 ‘놀이’에서 ‘특기’로 시작한 계기는 테스트였다. 집에서 놀이로만 끝내기엔 현수의 실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나머지 야구부가 있는 창영초등학교로 테스트를 받으러 간 것이다. 테스트 받기 전까지만 해도 오른손 글러브로 ‘대충’ 공놀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테스트를 받는데 왼손 글러브를 안 살 수가 없어서 비닐로 된 왼손 글러브를 사가지고 학교로 들어갔다. 솔직히 그 당시의 심정은 반반이었다. 제대로 된 환경에서 운동을 시킬지 아니면 단순히 취미 생활로 그치게 할 것인지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그래서 몇 십만 원 하는 왼손 글러브를 사지 않고 비닐 글러브로 대신했을 지도 모른다.
현진이를 처음 본 야구부 감독은 대번 흡족해 했다. 일단 체격에서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고 평소 야구 비디오(지금은 KBO 사무총장인 하일성 당시 야구 해설위원의 비디오 두 편을 닳고 닳도록 보고 또 봤다)를 보고 투구폼과 타격 연습을 하며 안정감있게 피칭과 방망이를 휘두른 모습들과 왼손 투수라는 특이성 등이 단숨에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감독은 그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었다. “현진이는 보통 선수가 아니에요. 와~ 괴물이에요 괴물!”
4학년 올라가면 야구를 시키고 싶다는 말에 감독은 4학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뭐가 있냐면서 내일 당장 전학시켜 야구부로 들어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현진이도 그러고 싶다고 해서 결국 다음날 인천 남부초등학교에서 창영초등학교로 전학을 시켰다. 전학 가기 전 현진이 담임 선생님이 현진이를 보내면서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되면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