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정보도 안주고 그저 가만히 있으라?’ 유족들 병원 상대 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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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전골수구성백혈병을 앓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김상준 씨. 사진 제공 = 김 씨 가족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어요. 너무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가다 보니까 이상한 점들이 보였어요.” 항암치료를 받던 중 뇌출혈로 사망한 김상준 씨(당시 26)의 누나의 말이다. 나직한 말투는 차분했지만 목소리는 떨렸다.
#사랑니, 그리고 백혈병
숨진 김상준 씨는 지난해 1월 말, 경기도 성남시 소재의 한 2차 병원을 찾았다. 사랑니에 통증을 느껴 치과에 방문한 것. 그런데 발치 후 좀처럼 피가 멎지 않는 등 알 수 없는 증세가 보였다. 결국 김 씨는 지난해 2월 13일, 또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 혈액검사를 했고, 백혈병이 의심 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최종 검사 결과 ‘급성전골수구성백혈병(M3)’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김 씨가 진단받은 M3는 백혈병 중에서도 치료 예후가 가장 좋은 편이었다. 치료계획과 순서가 각종 가이드라인(NCCN, ELN 등)에서 공식화돼 있으며, 골수이식 등 수술 없이 항암제만으로도 완치가 될 수 있는 유형에 속했다. 김 씨는 지체하지 않고 앞서의 2차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해 2월 17일부터 6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4차 항암치료 때 발생했다. ‘칸디다’라는 곰팡이균에 감염돼 위급한 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 중환자실에서 10일을 버티다 상태가 조금씩 호전돼 다시 일반실로 옮겨졌지만 4일 뒤 갑자기 뇌출혈이 발생해 또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리고 김 씨는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이틀 만에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백혈병은 항암치료 도중 면역력이 낮아져 감염 위험도가 높고, 혈소판 수치 감소로 인한 뇌출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김 씨의 가족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병원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김 씨의 누나는 “동생 치료 과정에서 병원 측의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담당 의료진들끼리 의사 전달도 안 돼 뇌출혈 증세가 보이는 응급상황에서 사실상 방치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 가족들에 따르면, 해당 병원은 무균실을 비롯해 백혈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또한 김 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직후 앞서의 2차 병원에 방문했을 때는 해당 병원은 김 씨를 담당할 주치의도 없는 상태였다. 실제로 김 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담당했던 주치의는 그가 처음 입원하고 보름이 지난 뒤 해당 병원에 새로 부임했다.
#병원을 떠났어야 했을까
물론 환자는 자신이 치료받을 병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의 가족들은 “병원 측이 그곳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누나는 “앞서의 사실들을 미리 알 수 있었다면 백혈병 전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다. 오히려 1차 주치의는 ‘동생의 병이 완치율도 90%나 되고 이식도 필요 없이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처음 내원한 날이 설 연휴 하루 전 날이라는 것을 말하며 ‘다른 병원을 가도 응급실에서 얼마나 대기해야 할지 모른다. 동생의 병은 급성이라 지체되면 환자 상태를 단정 짓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병원에서는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의사가 ‘병원을 옮길 의사가 있느냐’고 묻긴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옮길 수 있는 보호자는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의료진의 말을 믿고 입원했지만, 김 씨의 가족들은 백혈병 환자에 대한 병원 측의 대처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누나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면역력이 급속히 나빠진다. 그런데 동생이 쓸 침대에는 피가 묻어있었고, 병실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가족들이 나서서 청소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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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입원한 병실에서 발견된 곰팡이. 사진 제공 =김 씨 가족
또한 3차 항암치료가 진행된 뒤 김 씨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나타났는데, 해당 증상에 대한 이유를 간호사에게 묻자 단순히 ‘수혈 부작용’이라는 설명만 남길 뿐이었다고 한다. 이를 주치의에게 전달한다거나,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 간호사의 설명과 달리 당시 김 씨는 ‘칸디다균’에 감염된 상태였다. 칸디다균은 백혈병 환자들이 감염될 확률이 높고, 치사율도 높다. 김 씨는 이 균으로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김 씨가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은 지난해 6월 18일이다. 이후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해 6월 29일 일반실로 옮겨졌다. 당시 주치의는 “한 달 정도 집중치료하고 6개월 동안 통원치료하면 백혈병도 다 낫고 완치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뇌출혈, 방치
그런데 지난해 7월 3일 김 씨는 정오부터 돌연 스스로 머리를 두드리며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고, 같은 날 오후 9시부터는 구토를 시작했다. 병원 측에서 기록한 당시 간호기록지를 보면, 다음날인 7월 4일 오전 12시 50분까지 약 13시간 동안 주치의 또는 당직 의사가 김 씨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항의에 간호사가 확인하고 의사에게 보고한 뒤 두통약, 소화제 등을 처방한 기록은 있지만, 의사가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는 기록은 없다. 뒤늦게 당직 의사가 김 씨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이때도 별다른 처방은 없었다. 그리고 이날 새벽 5시 김 씨에게 뇌출혈이 발생했고, 7월 6일 오전 9시 세상을 떠났다.
김 씨의 누나는 “당시 의료진을 호출할 때마다 ‘오늘 그동안 안 쓰던 약을 처방했는데 그 부작용일 수 있다’는 설명만 들었다”면서 “백혈병 환자들은 혈소판 수치가 낮아 뇌출혈 발생 가능성이 높다. 두통과 구토는 뇌출혈의 대표적 증상이다. 백혈병 환자인데 새로 처방한 약의 부작용보다 먼저 뇌출혈을 의심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여기에 김 씨의 혈소판 수치는 지난해 7월 1일 4만, 3일은 3만 7000개를 기록했다. 정상수치는 혈액 1㎣당 15만~40만 개다. 2만 개 이하로 떨어지면 혈관 손상 없이도 자연적으로 출혈이 일어날 수 있다. 이때는 다른 치료와 함께 혈소판 수혈이 병행돼야만 한다.
그런데 지난해 7월 1일부터 김 씨에게 혈소판 수혈이 중단됐다. 이날 병원 측에서 작성한 의사지시기록에는 “오늘 수혈은 HOLD합니다. 제가 혈액은행에 이미 요청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 씨의 누나는 “당시 혈소판 수혈은 왜 안 하냐고 간호사에게 물었지만 간호사는 ‘열이 있어 수혈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동안 당시보다 열이 더 높은 상태에서도 수혈을 받았다. 실제로 이후 복도에서 의사를 만나 재차 물었는데, 의사는 ‘수혈이 안됐어요?’라며 오히려 놀랐다. 의료진 간 의사 전달이 전혀 안 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백혈병의 경우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염, 합병증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치료 과정 중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도 이 부분이다. 언제든 치료 가이드라인, 매뉴얼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병원 시설뿐만 아니라 돌발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의료진의 역할도 중요하다. 3차 병원의 경우 팀의 형태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현재 김 씨 가족은 해당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해당 병원 측 관계자는 “환자가 겪은 일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만 당시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고 환자 측 주장과 일부 다른 부분도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씨 가족들은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았던 날을 떠올리면 늘 후회가 된다고 한다. 의사가 “병원을 옮겨서 치료를 받을 거냐”고 물었을 때 옮겼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 씨의 누나는 “병원 시스템이 어떤지, 치료 과정에서 중단이 됐으면 왜 됐는지 설명해주는 의료진이 없었다. 옮길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의료진은 ‘옮기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선 상태도 악화된 데다, 의료기관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처방과 진료를 받고, 선택할 수 있어야 앞으로 동생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료 전문 변호사는 “설명 간호사, 코디네이터 등이 병원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일부 대형 병원을 제외하면,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 제공을 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며 “의료진으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데 원초적인 정보가 된다. 법정에서도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설명 의무를 다하지 못했거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면 그 책임을 의사나 병원 측에 엄격히 묻는다”고 전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