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웃을 때 우리도 웃었다
▲ 배영수. 오른쪽은 이치로가 공에 맞는 장면을 캡처해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카툰 장면. | ||
<일요신문>은 연말 특집으로 2006년 스포츠계의 장내외 비스토리를 공개한다.
2006년의 한국 야구는 ‘환희’로 시작해 ‘절망’으로 끝났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일본과 멕시코, 미국, 또다시 일본을 연이어 격파하며 4강 신화를 이뤘다. 그러나 기쁨은 채 1년이 가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가 11월 초 일본에서 열린 코나미컵에서 대만의 라뉴 베어스에게 패하며 망신을 당했다. 이어 12월 들어선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대만, 심지어 일본 사회인 대표팀에게마저 패하며 ‘도하 참극’을 낳았다.
춤추는 메이저리거
최희섭 김선우 등 병역 미필 선수들이 WBC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 해외파 선수들의 최대 골칫거리인 군 문제가 WBC 4강 덕분에 단숨에 해결된 것이다. 8강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박찬호의 호투 속에 일본을 또다시 격파하고 4강이 확정된 뒤였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한국 음식점을 찾아 회식을 했다. 4강전이 열리는 샌디에이고까지 이동하기 전에 하루 휴식일이 잡힌 덕분이었다.
이때 누군가가 “병역 문제가 해결된 선수들은 춤이라도 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운을 뗐다. 누가 뭐랄 것도 없었다. 최희섭이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을 췄다. 김선우도 따라서 흥겨운 댄스를 선보였다. 이후 당시 병역 혜택이 결정된 선수들이 차례로 뒤를 이어 테이블에 올라갔다. 현장에 있었던 국내 구단의 한 선수는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메이저리거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춤추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배영수의 ‘쾌거’
WBC와 관련해선 흥미로운 일화가 또 있다. WBC 때 이른바 ‘이치로의 굴욕’이라 불리며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었다. 대표팀의 배영수가 아시아예선 때 일본과의 경기에서 7회에 상대 간판타자 이치로의 엉덩이를 맞힌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 당시 배영수는 이치로에게 초구를 던져 사구를 내준 뒤 바로 강판했다.
▲ 박명환(왼쪽), 이병규 | ||
WBC 직전 이치로는 “일본을 상대로 앞으로 30년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주겠다” 발언을 내뱉어 한국 야구팬들에게 비난을 샀다. 배영수는 그런 이치로를 팽팽한 긴장 상황에서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는 배짱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투수가 일부러 타자를 맞힌다는 건 한편으로는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행위다. 그러나 당시 인터넷상의 반응은 고의성 여부를 떠나서 “통쾌하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결국 그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역전승을 했다. 당시 대표팀에 속했던 트레이너 등 관계자들은 “영수가 이치로를 맞힌 뒤부터 한국 벤치에 뭔가 활기가 솟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사서 고생한 김재박 감독
당초 도하 아시안게임의 야구대표팀 사령탑은 선동열 삼성 감독이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시즌 초반부터 KBO 하일성 사무총장이 선동열 감독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에 감독 한번 맡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제안을 했다. 선 감독도 크게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김재박 LG 감독(당시 현대)이 대표팀 사령탑을 자청하고 나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실제 6월쯤부터 ‘아시안게임 사령탑으로 김재박 감독 유력’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김 감독이 은근히 그 같은 분위기를 유도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지난 2003년 삿포로에서 열린 올림픽예선전 때 대만에 패하며 눈물을 흘린 김재박 감독으로선 이번 아시안게임을 명예회복의 기회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후 선동열 감독은 “김재박 감독님이 하고 싶어하시는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해 상황이 이미 정리됐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 WBC 1라운드 대만전에서 승리한 뒤 ‘선배’ 이종범이 박찬호 등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 ||
이병규, 어쩌다 보니 일본 진출
최근 LG 출신의 FA 이병규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선동열-이상훈-이종범에 이어 한국프로야구 선수로는 네 번째로 주니치에서 뛰게 됐다. 시즌 막판에 일본 언론을 통해 ‘주니치가 이병규 영입에 나선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병규는 일본에서 뛰고픈 마음이 거의 없었다. 이병규는 사석에서는 담당 기자들에게 “그냥 한국에 있을래요”라고 말하면서 서른 두 살이란 나이를 감안했을 때 해외 진출은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오프시즌에 LG와 FA 계약 협상을 하면서 일이 꼬였다. LG는 ‘4년간 최소 36억~최대 44억 원’이란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병규의 성에 차지 않았다. 이병규는 “협상 과정에서 구단의 성의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때마침 주니치 구단의 행보가 적극성을 띠면서 이병규의 마음이 서서히 일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치아이 감독을 비롯해 주니치 구단의 이병규에 대한 정성이 선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이병규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간다 만다 하더니 어~ 어~ 하다가 간 셈이다”라고.
박명환의 LG행은 예견된 일?
이병규와 함께 박명환도 시즌 막판부터 일본 진출 얘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이병규 사례와 달리 일본 구단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어 흐지부지됐다. 그런 가운데 두산의 간판 스타였던 박명환이 FA 자격을 얻은 뒤 LG 유니폼을 입게 된 건 엄청난 사건이다. 오죽했으면 LG가 라이벌 구단인 두산을 상대로 “간판 선수를 데려오게 돼 솔직히 미안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을까.
하지만 야구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박명환은 일찌감치 11년간 몸담았던 두산에서 떠나고 싶어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LG와의 계약이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라커에 들러 짐을 쌌다는 얘기도 들렸다. 미련 없이 떠난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두산에서 코칭스태프와 다소 불화를 겪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내년 시즌 두산과 LG의 대결이 재미있게 됐다. ‘한지붕 라이벌’이자 역대 선수 왕래가 드물었던 양 구단이 이번 겨울 들어 가장 굵직한 변화를 겪은 주인공이 됐으니 말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