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상황인데 왜 이리 조용한가요
사람들도 잘못은 용서할 수 있지만 잘못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정말 화가 나지 않습니까? 지금 한국 육상이 딱 그렇습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28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는데도 예전과는 달리 너무나 ‘조용’합니다. 국제종합대회에서 이번보다 성적이 더 좋았던 때도 ‘기초종목 육성 절실’, ‘한국 스포츠 최대의 과제’ 등 육상계는 물론이고 언론까지도 호들갑을 떨었는데 말입니다. 최고 단체인 대한육상경기연맹만 보더라도 예전에는 회장부터 쏟아지는 비판에 곤욕을 치르며 대책을 내놓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조용합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몇몇 언론에서 ‘육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는 했지만 예전에 비해 턱도 없이 ‘건전한 비판’이 줄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육상인들은 다 압니다. 육상연맹에는 미디어와 아주 친분이 두터운 인사가 있다는 사실을. 워낙 미디어와 가깝다 보니 대한육상경기연맹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아주 잘 차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육상연맹이 정작 육상 발전에는 재주가 없지만 언론 다루기에 있어서는 대한체육회 산하단체 중 가장 뛰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일요신문>에 글을 보내는 것도 육상에 대한 비판을 여과 없이 실어줄 매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육상은 스포츠에 있어 정말 중요한 종목입니다. 육상뿐 아니라 다른 종목의 발전과도 관련이 깊은 뿌리 스포츠입니다. 박세리 안정환 등 육상 출신의 국민 선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육상은 정말 심각합니다. 선수는 없고, 지도자는 태만하고, 육상연맹은 몇몇 인사들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며 자기 합리화에 바쁩니다.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가능성도 제법 높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취약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에게도 뒤지는 선수 경쟁력과 대중파급력이 적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육상의 45개 세부 종목 중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은커녕 확실하게 결선 진출을 자신할 선수가 한두 명밖에 없습니다. 4만~5만 명이 운집하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관중 동원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는 초등학교육상연맹이 없습니다. 육상보다 훨씬 저변이 약한 다른 종목도 있는데 말입니다. 또 한국에는 실내 육상경기장이 없습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베이징 상하이 위하이 등 세 군데나 실내육상경기장이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추운 겨울 훈련할 곳이 없습니다. 좀 사정이 좋으면 임시 비닐하우스에서 운동을 합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회장사는 삼성그룹입니다.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이죠. 투자할 돈도 있고, 또 의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이상하게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차라리 이전 박정기 회장 때가 더 좋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한국 육상이 진정한 발전을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육상인은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많은 노력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 육상의 발전을 간절히 바라는 육상 출신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