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출신 20대 남성이 아파트에 가둬… 2년 만에 가까스로 탈출
여중생을 유괴, 감금한 혐의로 이송되는 데라우치. 일본 TBS 캡처
악몽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3월 10일.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소녀는 CCTV에 학교에서 귀가하는 모습만 남기고 돌연 종적을 감췄다. 가족들은 매일같이 전단지를 뿌리며 소녀를 애타게 찾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한 채 답보상태를 이어갔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던 2016년 3월 27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녀가 공중전화를 통해 구조요청을 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소녀가 꺼낸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집 앞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납치돼 2년 동안 감금 생활을 강요당했다”는 것. 소녀는 “평상시 문이 잠겨있었는데, 오늘은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수사본부는 즉각, 23세 남성 데라우치 가부에 대해 ‘미성년자 유괴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지명수배를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데라우치는 흉기로 자살을 시도하다 피투성이 상태로 경찰에 검거됐다. 명문대학교를 갓 졸업한 ‘엘리트’의 가면이 벗겨진 순간이었다.
<주간신조>에 따르면, 데라우치 용의자는 일본 내 대학순위 10위권으로 평가되는 국립 지바대학에서 최첨단 IT공학을 전공했다. 최근에는 취직에 성공해 4월부터 도쿄에 소재한 소방 설비 회사에 출근할 예정이었다. 범행은 그야말로 치밀하게 계획됐다. 데라우치는 인터넷을 통해 유괴 장소를 물색했으며, 여러 차례 현장을 답사한 끝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뒤를 밟았다. 이후 현관 앞에 놓아둔 우산을 발견했고, 거기에 적힌 소녀의 이름을 몰래 확인했다.
경찰조사 결과, “데라우치는 유괴 당시 소녀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말을 걸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이혼하게 돼 데리러 왔다”는 말로 소녀를 유인한 뒤 자동차에 태운 사실도 밝혀졌다. 이와 관련, 수사 관계자는 “약 2년간 여중생이 감금됐던 방은 지바 시내에 있는 독신자형 아파트로 지은 지 3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사차 현장에 들어선 순간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직 어린 소녀이기에 비좁은 공간에서의 감금생활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라우치 가부가 여중생을 감금했던 지바시 독신자 아파트. 사진출처=구글맵
피해자 소녀의 진술에 의하면, 감금됐던 아파트 현관에는 특수자물쇠가 설치돼 있었다. 창문 또한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고, 실내등조차 켤 수 없어 밤에는 깜깜한 상황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방에서 컴퓨터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 컴퓨터는 특정 페이지만 열람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나마 소녀가 컴퓨터를 사용하고 난 뒤에는 데라우치가 일일이 검색 내역을 체크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데라우치가 오사카 출신으로 대학에서 건축학과 교수를 지낸 할아버지를 필두로 가족 대부분이 고학력자”라고 보도했다. 특히 데라우치의 부친은 5년 전부터 오사카부 이케다시에서 방범설비 판매업체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 중에는 베란다 창틀에 설치하는 인체 감지센서와 감시카메라, 특수자물쇠 등이 포함돼 있어 데라우치가 여중생을 감금하는 데 사용한 장비들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소녀가 감금됐던 방이 낡은 건물이라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 범인이 대학생이었던 까닭에 낮에 자주 집을 비웠다는 점,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다면 옆집이나 외부에 들렀을 텐데 이웃주민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어 ‘스톡홀름 증후군’을 언급하기도 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인질범에게 오래 붙잡혀 있으면 오히려 인질범 입장에 동화되어 동조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견해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신과의사 마치자와 시즈오 씨는 “감금된 장소는 유괴범이 다니는 학교와 매우 가까웠고, 완전히 그의 생활권 내에 있었다. 감시카메라에, 불과 몇 분이면 자신을 잡으러 올 수 있는 상황에서 탈출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소녀는 탈출을 미루는 대신 범인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도록 행동하고, 기회를 엿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데라우치가 지속적으로 소녀에게 ‘넌 부모에게 버려졌다. 아무도 너를 찾고 있지 않다’라는 식의 거짓말을 주입시켜 달아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피해자 소녀는 “처음에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우연히 인터넷에서 가족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감금된 2년 동안 피해자 소녀는 키가 5cm나 자랐다. 극적으로 탈출해 무사히 가족의 품에 안겼으나 향후 트라우마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꽃 같은 소녀의 인생을 망친 ‘무도한 죄’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 현행법상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변호사 야마구치 히로시 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성년자 유괴는 최고 7년형에 처해진다. 이번 사건의 경우 소녀를 차에 태웠을 때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서 징역 2~3년의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 후 아파트생활에서 범인이 폭력을 휘둘렀다면 형량이 추가되겠지만, 입증이 어려워 그 또한 쉽지 않다.”
데라우치 용의자는 소녀가 탈출한 뒤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체포 당시 그의 오른쪽 목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있었으며, 유서로 보이는 메모도 발견됐다. 주간지 <여성자신>은 “‘가족에게 죄송하다’는 글이 적혀있었지만 이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미안함으로,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죄의식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잡지는 용의자에 대해 “상당히 자기중심적이고 일그러진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다”고 평가했다.
한편, 여중생을 유괴·감금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용의자가 최근 졸업한 지바대학 측은 “데라우치 가부의 학위 수여를 취소하고 졸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피해자 여학생은 2년 동안 감금돼 있어 학교에 다니진 못했으나 “중학교 졸업장이 주어질 계획”이라고 지자체 교육위원회가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