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이중섭 절친이자 동시대 앞서간 비운의 화가…‘비 시리즈’ ‘집 시리즈’ 등 순수한 주제 많아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 4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가 바뀌었습니다.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유화입니다. 1970년작 전면 점화 ‘무제’가 약 49억 원에 낙찰되며 한국 미술작품의 깊은 관심과 단색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입증했습니다. 김환기는 지난해 이중섭의 작품 낙찰가를 뛰어넘은 이후 2년 연속 최고가를 바꾸고 있습니다.
1940년 상해에서 열린 일본미술가협회 주관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은 백철극의 작품 ‘상해거리’.
이러한 시기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을 상해에서 살았던 화가 백철극(1912~2007), 이 낯선 이름을 상해의 문화예술계에서 재조명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그는 김환기, 이중섭과 절친한 동료이자 동시대에 앞서간 뛰어난 화가이기 때문입니다. 김환기와는 일본 유학도 같이 했고 뉴욕에서 같이 활동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고받은 편지도 남아있습니다. 그는 도쿄, 상해, 몬트리올, 뉴욕, 파리, LA에 거주하며 주로 해외파로 남았기에 우리에겐 낯선 게 사실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정도입니다. 더구나 파리의 시장상을 수상하고 그의 작품들이 ‘단독 명예작품 감상실’로 파리에서 전시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1940년대 상해. 당시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던 도시입니다. 많은 아시아의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청년 화가 백철극은 1937년 일본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도쿄 홍고 아카데미 현대미술 연구원으로 2년간 일한 뒤 상해로 왔습니다. 1940년 28세이던 백철극은 임시거처였던 3층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던 상해 거리의 풍경을 15호쯤 되는 캔버스에 담아냈습니다. 후기 인상파 기법의 그림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상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일본미술가협회가 주관하는 전시회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상인 특선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가난했던 청년화가 백철극은 상해 만세관 회계장부 뒷면에 수십 점의 스케치를 그렸다. 백철극이 만세관 용지에 그린 화사한 외국 여인.
상해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그가 남긴 수십 점의 스케치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그는 외국인이 많이 살던 홍커우 지역에 살았습니다. 그 길목에 자리 잡은 만세관은 상해에서 유명한 붉은 벽돌로 지은 호텔입니다. 그는 만세관에 방을 하나 얻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 만세관 회계장부 뒷면을 활용해 스케치를 한 것입니다. 만세관 당시 모습, 중앙우체국 근처의 다리, 외국 여인의 모습, 자신이 쓰던 미술도구 등이 그것입니다.
화가 백철극의 삶에서 상해는 잊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가난했지만 고향사람인 부인을 만나 신혼을 보낸 곳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녀들이 다니던 인성학교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각각 중학교 미술교사와 초등학교 교사로 몇 년간 일했습니다. 해방 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납니다. 떠나기 전까지 그린 그의 추상작품들은 칸딘스키와 잭슨 폴락의 영향을 받아 아크릴을 이용해, 선을 통해 동양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뉴욕과 파리에서 그의 본격적이고 창조적인 미술세계는 꽃피우기 시작합니다. 2007년 지병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고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호를 ‘간노미’로 썼습니다. 북한말로 간놈이, 금방 낳은 어린아이란 뜻입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처럼 살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탓일까요. 그가 남긴 작품엔 ‘비 시리즈’ ‘집 시리즈’ 등 순수한 주제들이 많습니다. 겸재 정선 미술관장인 이석우 경희대 명예교수는 언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구자는 늘 고독합니다. 고난 중에서도 예술을 위해 몸부림치던 백철극의 삶은 훗날 아름다움으로 되살아났습니다. 화가 백철극의 일생은 그의 차남 백필립 의료선교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상해에서 찾아낸 만세관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의 차남 백필립은 현재 미얀마 양곤에서 의사로서 음악가로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상해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기도 했던 그는 이제 부친의 회고전을 국내가 아닌 상해에서 치르게 될 거 같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