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붕괴’냐 ‘불패 신화’냐
부동산 규제와 박세리
나라 전체가 IMF 경제위기에 신음하고 있던 98년 박세리의 미LPGA 제패는 정말이지 교과서에 실리고도 남을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깜짝 우승을 달성했다. 그것도 연못 맨발 샷 등 역사에 남을 연장 명승부를 통해.
당시 박세리는 삼성과 96년부터 10년간 연간 1억 원의 후원 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 자체만 해도 파격적인 대우였다. 하지만 미LPGA 정상 등극이 워낙 눈부셨기에 도저히 이것으로는 국민의 영웅 박세리를 대접할 수 없었다. 광고 출연 간접 지원 등을 포함해 66억 원이 넘는 특별 보너스가 급히 지급됐다. 전속 계약도 5년이 지나면 재협상하기로 했다.
1등이 이렇게 대박을 터뜨리자 나머지 선수들의 몸값도 치솟았다. 강남 아파트 값이 ‘강남불패신화’를 앞세워 폭등하자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이 뒤따른 것과 마찬가지다. 99년 신인왕에 오르며 ‘땅콩 신화’를 보여준 김미현이 각종 스폰서와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버블의 정점은 2002년이었다. 그해 봄(5월 31일) 삼성과 박세리는 재계약이 무산됐다. 연간 수십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오고갔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박세리는 그 해 가을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초대 여왕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CJ고위층의 신임을 얻어 초대형 계약을 맺게 됐다. 2003년부터 5년간 연간 30억 원(인센티브 10억 원 포함), 5년간 15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여기에 용품후원사인 테일러메이드와도 연간 10억 원을 받게 됐다.
후폭풍은 컸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미현이 KTF와 연간 10억 원(2003~2005년), 한희원도 휠라와 같은 액수로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김미현은 김영주패션으로부터 2년간 3억 8000만 원, 혼마와는 3년간 6억 원을 별도로 받기로 했다. 당시 미PGA 우승을 일궈낸 최경주가 연간 10억 원을 받는데 그쳤으니 그야말로 천정부지 수준이었다.
거품이 터졌다
박세리를 필두로 한국 선수들의 미LPGA 진출이 줄을 이었고 이제는 한국선수가 미국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그만큼 홍보 효과가 줄어든 것이다. 거품 빠지기는 2005년말 김미현부터 시작됐다. 어렵게 KTF와 재계약했지만 액수가 크게 줄었다. 연간 15만 달러선. 물론 액수를 줄이는 대신 인센티브 옵션을 강화했지만 전체적으로 계약 규모는 3년 전에 비해 3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 이는 한희원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연간 10억 원을 부르짖던 몸값이 이제는 ‘2억 원만 받아도 좋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뚝 떨어진 것이다. 실제로 향후 미LPGA의 기대주로 평가받는 국내 투어의 유망한 선수도 연간 1억 원에 만족하게 됐다. 아니 심지어 스폰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됐다. 거품이 터진 것이다.
결국 성적이 말한다
박세리는 한국 여자골프계의 바로미터다. 이제껏 모든 것이 박세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다. 박세리가 2007년 말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나머지 선수들의 몸값이 오르내릴 것이다.
현재 박세리 측과 CJ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CJ의 담당자는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현재로서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박세리가 CJ의 간판이고 또 그에 걸맞은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는 점이다. 올 가을은 돼야 재계약 여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리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세마스포츠의 이성환 대표도 “변수가 많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만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반 거품 붕괴설’과 ‘박세리는 다르다’는 전망이 충돌하고 있다. 먼저 거품 붕괴설은 △워낙에 다른 선수들의 몸값이 크게 하락했고 △슬럼프 장기화에 따른 홍보 효과 반감 △재계약 대상자인 CJ가 2006년 각종 악재에 추징금, 과징금을 부과받으며 긴축재정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CJ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기업도 5년 전 CJ가 박세리에게 준 금액을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먼저 ‘호랑이론’이다. 박세리는 2002년 삼성과 재계약이 불발된 후 반년이 넘도록 메인 스폰서 없이 경기를 치렀다. “호랑이가 배고프다고 풀을 뜯어먹을 수는 없다”는 부친 박준철 씨의 단호함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성적도 좋았다. 결국 이런 태도는 CJ와의 초대형 계약으로 이어졌다.
또 상상을 초월하는 박세리의 파괴력을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중 박세리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슬럼프 때 온 국민이 걱정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애정도 대단하다. 어느 기업이든 ‘국민 골퍼’ 박세리를 갖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2007년 12월 박세리가 미LPGA 만 10년을 채우며 한국인 최초로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는 사실로 큰 호재다. 자서전 발간 및 각종 기념 이벤트가 준비 중이다. 박세리를 영입하자마자 최고의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박세리의 재계약 여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2007시즌 박세리의 성적이다. 아무리 악재가 많아도 빼어난 성적으로 ‘여왕의 귀환’이 달성되면 몸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거꾸로 툭하면 컷오프되는 최악의 성적은 어떤 긍정론도 무력화한다.
이성환 대표는 “박세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강하다. 연장불패의 신화로 유명하지 않은가. 2007년 박세리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박세리가 2005년부터 시작된 장기 슬럼프를 확실히 극복하지 못했고, 사실상 전성기가 지났다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2007년 절체절명의 재계약과 맞물린 ‘세리의 선택’은 무엇일까.
유병철 스포츠 전문 라이터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