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이 쉬쉬하는 사이 2차 3차 피해자까지
사건은 지난해 9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은 청주 소재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날 회식은 4차까지 이어졌다. 밤 11시께 4차 자리에서 교사 A 씨(30)는 만취상태로 동료 여교사에게 접근했다. A 씨는 당시 여교사의 가슴을 만졌다. 여교사는 A 씨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시도했으나 A 씨는 재차 다가가 속옷의 끈까지 강제로 풀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술에 만취해 구토를 하던 여교사에게도 몹쓸 짓을 했다. 등을 두드려주는 척하면서 이마에 입을 맞췄다.
여성 실루엣.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문제는 이 학교 교감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감은 지난해 10월 말 해당 성추행 사건을 인지했으나 A 씨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A 씨는 올해 3월 1일, 타 학교 인사이동을 발령받았다.
그런데 사건은 다시 터지고 말았다. 지난 2월 19일은 A 씨를 비롯해 타 학교로 발령받은 교사들의 송별회가 있는 날이었다. 이날도 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고 3차로 노래방을 찾았다. 이때 한 여교사가 술에 취해 노래방 빈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이를 바라보던 A 씨는 해당 여교사의 방으로 찾아가 가슴을 만졌다. 하지만 또 다른 여교사에게 성추행 장면을 들키고 말았다. 그러나 A 씨는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지켜보던 여교사의 허벅지와 종아리 등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까지 저질렀다.
나흘이 지난 2월 23일 교감은 피해 여교사들로부터 A 씨의 성추행 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번에도 교감은 사건을 키우지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 간 합의를 권했다. 사건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A 씨도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으며 각서까지 작성했다. 각서 내용은 ‘술을 절대 마시지 않겠다’,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겠다’, ‘성폭력 관련 치료를 받겠다’ 등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됐고 A 씨는 다른 학교로 떠났다.
그러다 지난 3월 7일 충북교육청에 익명의 제보전화가 왔다. 지인이 동료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해 고통스러워한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충청북도 교육감 앞으로 같은 내용의 투서가 두 차례에 걸쳐 날아왔다. 해당 전화와 투서 모두 피해자의 지인이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충북교육청은 조사에 들어갔고 사건은 6개월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현재 A 씨는 직위해제 처분을 받은 상태다.
충청북도교육청 전경.
이번 사건은 교감이 성추행 사건을 알았음에도 덮으려했다는 점에서 특히 비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교감이 승진에 지장이 있을까봐 사건을 덮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청 매뉴얼은 성추행 등 교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상급 기관인 교육지원청에 보고하도록 돼있다. 이와 동시에 인사 등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조치해야 한다. 그러나 교감은 교육청은커녕 교장에게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군다나 당시 교감은 현재 충북교육청 기획관에서 근무 중이라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이외에도 A 씨가 학교 내에서 학생부장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앞서의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부정했다. 그는 “이제 갓 서른 된 사람이 무슨 위치를 가질 수 있겠나”라며 “설령 가지더라도 교장이나 교감을 제외한 다른 직위는 명예직에 가깝지 교사들 사이에서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교감 측은 본인의 안전이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충북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 발생한 1차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들이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미혼인 피해자들은 안 좋은 소문이 나면 학생들에게도 눈총을 받을 수 있어 조용히 넘어가기를 원했던 것. 또한 당시 신혼이었던 A 씨 부인의 입장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2차 성추행 사건 역시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급기관에 보고하지 않았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교감에 대해 “굉장히 교육에 열정적인 사람인데 이런 일에 휘말려 안타깝다”며 “피해자들 인권에 신경쓰다보니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전했다.
교감의 의도와는 별개로 제때 보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충북교육청은 지난 12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교장과 교감에게 견책, 감봉 등의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 교장이나 교감이 성범죄 관련해서 징계를 받는 것은 충청북도에서 처음이다. 한편 A 씨는 현재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교육청 감사과에서 경찰조사를 의뢰한 것. 따라서 A 씨는 교육청의 직위해제 처분 외에 별도로 형사처벌을 받을 예정이다.
한편 피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 피해교사는 아예 초등 임용고시를 다시 치르면서까지 다른 지역의 초등학교로 떠났다. 남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해당 학교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기자나 네티즌들이 사건이 발생한 학교까지는 추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학교 같은 작은 조직에서 소문나는 건 금방”이라며 “확실하게 결정된 건 없지만 아마 다른 피해교사들도 다른 학교로 전출되지 않겠나”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