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점 떨어지고 상처 투성인데…담당교사 항소심서 무죄
충북 성심맹아원에서 숨진 김주희 양의 생전 모습. 왼쪽은 김 양의 어머니.
새벽 시간, 한 장애인 복지학교 기숙사의 원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검찰은 학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부모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항고마저 기각되자 재정신청을 냈다.
법원은 일부 주장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첫 재판이 열렸다. 사건 발생 2년 만이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당직 교사에 대해 관리 부실로 복지시설 내 원생을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부모는 아직도 진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숨진 딸의 시신에서 단순 자연사로 볼 수 없는 정황들이 발견됐지만 그곳에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경찰과 검찰 수사, 재판에서도 다뤄지지 않은 채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숨진 김주희 양(당시 11세)은 5남매 가운데 넷째다. 6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탓에 쌍둥이 언니와 함께 시각장애 1급과 뇌병변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딸에게 자립심과 사회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양의 부모는 2008년부터 전국 각지를 수소문하며 딸에게 맞는 학교를 찾았다.
당시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이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입학 신청을 해도 기약 없이 대기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2011년 10월, 충북 충주성심맹아원에서 입학 허가 연락을 받았다. 경기도 화성 집에서 충북 청주까지 제법 먼 거리였지만, 입학 시기도 아닌 때에 어렵게 난 자리인 데다 교사가 24시간 동안 3교대로 돌봐준다는 지인들의 말에 부모는 서둘러 준비했다. 김 양과 쌍둥이 언니는 같은해 11월, 해당 학교 기숙사에 입소했다. 이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이면 김 씨 부부가 집으로 데려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런데 1년이 지난 2012년 11월부터 맹아원 측 관계자가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일주일마다 맹아원을 방문하던 김 씨 부부에게 ‘매주 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김 양 자매가 나갈 때마다 우는 등 교육상 안 좋으니, 다른 아이들의 부모처럼 2~3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맹아원 측은 단호했다.
부모는 맹아원의 의견을 따라 2주에 한 번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 양을 보러 가기로 한 하루 전, 또 한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김 양의 골반 쪽에 상처가 생겼다는 말이었다. 맹아원 관계자는 “가볍게 쓸린 상처라 괜찮다”라며 당장 내려가겠다는 김 씨 부부를 만류했다.
다음날인 2012년 11월 8일 오전 6시 40분, 김 양 부모에게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주희가 사망했다”는 맹아원 관계자의 전화였다. 하루 전까지 멀쩡하다던 딸의 사망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김 양 부모는 상복을 입고 2시간을 달려 김 양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김 병원에서 만난 맹아원 관계자는 “주희가 잠든 상태에서 편안하게 떠났다”고 말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딸의 장례절차를 위해 사망진단서와 검안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맹아원 교사와 교감이 “잠시 의논할 일이 있다”며 김 씨를 붙들기 시작했다. 충주경찰서 보안과 형사도 명함을 건네며 “관계자들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진단서를 떼시라”며 김 씨를 말렸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김 씨는 서둘러 사망진단서를 발급 받았다. 그런데 진단서를 보면, 잠을 자다 편안하게 떠났다던 딸의 시신 곳곳에 깊은 상처와 멍자국이 있었다. 골반 살점은 약 7cm, 귀 뒤 쪽 살점은 5cm가량 떨어져 나갔다. 목에는 압박으로 인한 함몰 흔적이, 등에는 15cm가량의 깊은 상처도 기록돼 있었다.
김 양의 사체 사진. 골반 살점이 7cm가량 떨어져 나갔다.
김 양 부모는 타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시 시신을 확인한 병원 측에 경찰 신고 여부를 물었으나 신고는 되지 않았다. 김 양 아버지가 항의하자 맹아원 관계자와 병원 측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앞서 김 씨에게 명함을 건넨 충주경찰서 보안과 형사가 병원에 있었어도 마찬가지였다. 최초 신고는 김 양이 숨진 채 발견된 지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뤄졌다.
여기에 김 양의 아버지는 김 양의 시신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수상한 정황이 보이자 김 씨는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타살 의혹이 있는데, 사체 확인 절차를 알려 달라”고 문의했다. 서울경찰청은 “절차상 경찰 조사 전 유족이 사체를 먼저 확인할 수 있다”며 “사망자가 발생해서 안치실로 안치하려면 의사 소견이 있어야 하고, 경찰입회하에 안치된다. 이 과정에서 유족의 확인은 당연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충주경찰서의 절차는 앞서의 설명과 달랐다. 이미 김 양의 시신은 이미 김 양 부모가 병원 도착하기 전 안치실에 보관돼 있었고, 김 씨가 시신을 확인하러 내려가자 형사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냈다. 김 씨는 경찰 조사가 잠시 소홀해진 틈을 타 안치실 직원을 설득하고 나서야 김 양의 시신을 확인하고 상처 사진 일부를 찍을 수 있었다.
김 양은 자다가 사망한 것도 아니었다. 경찰 조사에서 당시 당직 교사 강 아무개 씨(44)는 김 양의 사망 당일 새벽 1시 30분께, 김 양이 잠이 들지 않자 빈 방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히고 평소 듣던 동요를 틀어준 뒤 다른 방에 가서 잠이 들었다고 했다. 4시간 뒤인 5시 30분께 담당교사 강 씨는 김 양이 혼자 있던 방으로 들어갔는데, 김 양이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 공간에 목이 끼인 채’로 사망해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상처와 멍이 왜 생겼는지, 김 양이 어떤 이유로 숨졌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긁다가 생긴 상처 같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경찰은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피의자가 부인하고 있고, 학대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도, 추가 조사는 없었다.
주희 양이 맹아원에서 사용하던 어린이용 책상과 의자. 맹아원 관계자는 “김 양이 무릎을 꿇은 채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에 목이 끼여 숨졌다”고 진술했다.
수시로 바뀌는 맹아원 측 진술에 김 씨는 김 양의 사망원인을 밝혀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하지만 1차 부검 결과 경찰은 “평소 복용하던 약이 잘못돼 숨진 것 같다”며 약물사로 단정했다. 그러나 얼마 후 국과수는 사인불명으로 결론을 냈다. “위부터 소장까지 내장이 대부분 비어있었다” “질식사로 생길 수 있는 안면부 울혈이 발견됐다”고 분석하면서도 언제, 어떻게 숨졌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김 양 시신 곳곳에 있던 상처와 멍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견이 없었다.
김 양 부모는 “당시 경찰은 딸의 사인도, 국과수 부검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으로 수사기록 열람을 수차례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상처와 멍자국뿐만 아니라 내장이 비어있다는 건 한동안 식사를 못 했다는 뜻인데, 여기에 대한 설명도 수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 양 부모가 장례도 못 치르고 계속해서 진정서를 넣자 검사가 시신을 확인하러 왔다. 김 씨는 “검사가 시신을 보고 ‘얼마나 힘드셨습니까’라며 타살과 학대에 관해서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딸을 그만 보내주라고 했다. 딸을 잃은 이후 처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확히 3일 뒤, 담당검사가 바뀌었다. 사유는 검찰청에 수차례 문의를 해도 알 수 없었다.
이후 뒤늦게 재부검 승인이 떨어졌다. 이미 김 양의 시신이 화장되고 담당검사가 교체된 후였다. 부검할 시신이 없다고 하자 검찰은 사진으로 재검시를 하겠다고 했다. 부검으로도 판명하지 못했던 사인이었다. 국과수는 사진 판독을 통해 또 다시 사인불명이라는 의견을 내면서도 ‘돌발성 간질로 인한 급사’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평소 김 양이 앓던 간질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다른 의견을 낸다. 이들이 의료기록과 진단서 등을 검토한 결과, 김 양의 경우 간질로 인한 사망 확률은 낮으며 방임·방치에 의해 벌어진 질식사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국내 대형병원 신경과 전문의 10명은 모두 같은 의견을 냈다. “소아청소년 간질 환자를 대상으로 한 외국의 대규모 연구결과에서는 원인 중에 원인불명의 돌연사는 보고된 바 없다”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았을 경우, 발작 증세를 일으키다 물에 빠지거나 심하게 부딪혀 사망할 가능성이 있으나 김 양의 경우 약을 꾸준히 먹고 있었고, 수술까지 받았기 때문에 간질로 인해 돌연사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와 당직 교사의 진술을 토대로 김 양은 간질로 인한 발작이 있었고, 소생 가능성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여기에 검찰 조사 기록을 보면 당직 교사가 당시 자리를 비운 것을 인정하는 진술을 한 것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검찰은 강 씨를 비롯한 충주성심맹아원 관계자들에 대해 “김 양의 죽음과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김 양 부모는 즉시 대전고등검찰청에 항고했지만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김 양의 아버지는 “딸 몸에 있는 상처가 왜 생겼는지, 사고 당일 왜 혼자 방치돼 있었는지, ‘무릎을 꿇고 목이 끼였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자세로 숨졌다는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경찰, 검찰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학대 정황보다는 업무상 과실 치사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양 부모는 청와대에 진정을 넣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직접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증거 수집을 시작했다.
2년 뒤, 마침내 김 양 부모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진다. 대전고등법원에서 재정이 결정된 것. 대전고법 재판부는 강 씨는 당시 김 양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어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데도 피해자를 의자에 앉도록 하고 동요만 틀어준 채 곧바로 다른 방으로 가서 잠을 잤다는 점을 들어,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김 양의 상처와 멍자국, 질식사로 생길 수 있는 안면부 울혈 등은 사망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2014년 7월 21일 검찰에 강 씨에 대해 공소제기를 명령했다. 김 양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8개월 만에 첫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변론을 서면으로 제출했다. 변론 내용도 강 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재정 신청이 받아들여져 공소 제기된 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김 양 부모에겐 낯설기만 했다. 재판의 쟁점도 업무상 과실이었다. 김 양의 상처와 멍자국, 사인 등은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 18일, 1심 재판부는 강 씨에 대해 관리 소홀을 인정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김 양 부모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았고 통보도 없었다. 항소심 재판은 오히려 무죄를 주장하는 강 씨에 의해 열렸다. 2심 재판 과정도 앞서의 1심 재판과 비슷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지난 15일, 1심 판결을 뒤집고 강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망한 아동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은 과실은 인정되지만 그 과실로 아동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재판만 믿고 4년을 버텨왔다. 그런데 재판에서마저 상처와 멍자국, 사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 항소도 기대할 수 없고 이제는 어디에 기대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