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면 그나마 양반…무자격자도 많다”
유명 성형외과 의사가 앞에 앉아 있다. 텔레비전이나 SNS 광고를 통해 보던 그 의사다. 그는 친절하다. 얼굴을 빤히 보고는 원하는 모습 그대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한다. 마침내 수술 당일, 수술대에 누워 불안해하자 의사가 다가와 “잠깐 자고 일어나면 예뻐져 있을 거다”라며 안심시킨다. 마취가 시작되고 눈이 감긴다. 서서히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의사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수술실로 들어온 사람, 처음 보는 의사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조 아무개 씨(28)의 증언이다. 언뜻 이해할 수 없다. 분명 유명 의사와 어떤 부위를 어떻게 수술할지 상담했는데 정작 메스를 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조 씨는 “유명 의사라고 해서 믿고 찾았는데, 수술한 의사가 달랐다. 분명히 수술실에서 의사가 교체되는 것을 봤는데 병원 측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니,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지난 2013년 사각턱 성형 수술을 받은 조 씨는 현재 입을 크게 벌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 병원을 찾아 항의했지만 관계자는 “수술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에서는 조 씨의 턱을 보고 “성형수술 과정에서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조 씨가 해당 병원에 대해 주장하는 의혹은 ‘유령성형수술’이다. 유령수술이란 환자에게 동의를 받지 않은 의사가 수술 전체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들이 마취된 상태에서 의식이 없는 틈을 이용해 수술 의사를 바꾸는 것이다. 병원장이나 전문의가 환자를 진찰‧상담한 뒤, 수술은 대리 의사인 ‘유령의사(섀도 닥터)’가 집도하는 형태다.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성형외과에서 직접 진료한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수술을 진행하는 ‘유령수술’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성형외과 밀집지역으로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계없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문제는 A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다른 성형외과에서도 이러한 ‘유령수술’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까지 강남의 한 성형외과 상담실장으로 근무했던 최 아무개 씨(29)는 “성형외과 업계에선 일부 병원장과 상담실장, 집도 의사, 유령의사가 결탁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유령수술이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정형외과 등 과를 구분하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법도 다양하다. 앞서의 조 씨의 경우처럼 환자에게 유령수술 사실을 숨기기 위해 병원장이나 상담 의사가 수술실에서 환자를 안심시킨 뒤 의사를 교체하거나, 유령의사들에게 똑같은 안경테를 지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가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의 의료계 관계자는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의사가 수술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오더리(orderly)’라는 비공식 의료용어가 있다. 원래 의사의 지시(오더)를 받고 일하는 남자 간호인력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최근에는 어깨 넘어 배운 수술법으로 직접 메스를 잡는 ‘숨은 실력자’를 칭한다. 보통 수술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면 베테랑으로 인정받는다. 손기술이 좋아 특정 분야에 한해서는 웬만한 의사보다 수술을 잘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무자격자에 의한 유령수술은 간호조무사뿐 아니라 수술 의료자재나 기기를 납품하는 업체의 사람에 의해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유령수술 병원의 운영 방법도 다양하다. 병원 내 치과 등 또 다른 병원을 개설해 하청을 주는 ‘하도급형’, 큰 수술방에서 여러 명의 환자를 마취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수술하는 ‘창고형’, 여러 개 수술방에서 시간이 나는 의사를 돌려가며 수술하는 ‘공장형’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대형병원에서 유령수술을 통해 실력을 쌓은 의사가 병원을 개설해 또 다시 유령의사를 고용하는 점조직 형태로 번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법 유령수술이 ‘돈’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지적한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의료광고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일부 병원이 광고로 환자를 모집했다. 병원장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술 일정이 잡히면서 친분이 있는 의사를 고용해 수술을 맡긴 것이 유령수술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후 지난 2010년을 전후로 후배 의사에게 집도를 맡기던 병원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형외과 전문의 대신 인건비가 저렴한 치과 의사, 이비인후과 의사 등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들 사이에 유령수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자, 전신 마취약을 이용해 환자의 의식을 잃게 하는 수술이 일반화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병원에선 부족한 의료인력 실태로 인한 불가피한 현실이란 주장도 나오지만, 명백한 불법행위를 정당화해줄 순 없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성형외과 의사는 “직접 진찰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입이 어느 정도까지 벌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근육이 얼마나 당겨질지도 모른다. 1mm차이로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거나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전문가라고 수술실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유령수술은 수술이 잘되든 안되든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위험천만한 ‘도박’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처벌이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유령수술에 대한 사례가 수면위로 떠오른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관련 판례도 없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유령수술에 대해 사기죄는 물론 반드시 상해죄나 중상해죄를 적용해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현재 이를 입증하는 것부터 어려운 실정이다. 수술방에서 환자가 의식을 잃은 채 진행되기 때문에 피해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고, 관련 서류와 영수증 등을 조작하는 등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진행돼 내부 고발자가 없다면 밝혀지기 힘들다.
또한 내부고발자가 용기를 내기 어려운 현실도 유령수술 적발을 어렵게 만든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내부고발자의 경우 불법 행위에 가담한 공범으로 적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에 적발된 앞서의 A 성형외과에서 “직접 유령수술을 했다”고 양심고백을 한 내부고발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러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유령수술 방지를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의사회는 수술동의서를 조만간 내놓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해당 수술동의서가 반드시 환자에게도 교부돼야 한다는 의료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의사회 관계자는 “의사가 수술을 할 수 있는 권리는 환자의 허락과 합의에 의한 것이지 의사면허증에 당연 내재된 권리가 아니다”라며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상현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