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145km 김시진 감독도 ‘군침’
▲ 지난달 23일 현대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손혁이 현대 선수들과 함께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OSEN | ||
가뜩이나 시커멓게 탄 마른 얼굴에 눈까지 크게 뜨니 쑥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았다. 지난 2004년 4월 두산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한 손혁(34). 기자는 이후 공교롭게도 매년 묘하게 조우했다. 2004년 여름 LPGA투어에 참가 중이던 손혁의 아내 한희원이 오클라호마에서 대회를 치르고 있었는데 손혁도 함께 다녔다. 지난해엔 샌디에이고에서 치러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에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러 온 그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때 손혁은 야구를 잊은 30대 중반이었으며, 뭔가 다른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지만 딱히 해답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손혁은 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야구 인생을 다시 리바이벌한 듯했다. 오랜 기간 조연에 머물던 배우가 십 수 년 만에 드라마 타이틀 롤을 따낸 표정. 2007년 3월 미국에서 만난 손혁의 표정이 정확히 그랬다. 볼티모어 마이너리그에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손혁.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손혁과의 인터뷰를 일기 형식으로 구성해 본다.
:: 처음엔 아내가 싫어했다
임신 중인 희원이는 처음에 참 싫어했다. 그렇게 안하겠다고 하던 야구를 왜 다시 하냐고. 그래도 이왕 시작하는 것 똑바로 하라고 한다. 어렵게 허락해준 아내에게 무척 고맙다. 임신 5개월째인데 의사 말로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계속 운동을 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조언해 줬다. 미국 선수들은 임신 7~8개월이 되어도 커다란 짐을 들고 다닌다면서.
아내와 함께 LPGA 투어를 다니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운동을 하는 것보다 아내의 플레이를 보는 게 훨씬 힘들었다. 그래서 살이 많이 빠졌다(웃음).
고생할 각오는 돼 있다. 지금 꿈은 정말 단 한 경기라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것이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최소 2년은 해볼 생각이다.
:: 결론은 ‘그래! 하자!’
미국 샌디에이고 등에서 투수 재활 클리닉과 관련된 공부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 희원이의 코치 아들이 무슨 야구클리닉에서 배우고 있다고 하기에 직접 찾아가 봤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수업한 톰 하우스 클리닉이 미국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라는 사실을. 랜디 존슨(뉴욕 양키스), 마크 프라이어(시카고 컵스) 같은 대투수들도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투구폼을 점검받는다고 한다.
▲ 지난 2004년 LPGA 나인브릿지대회에 아내 한희원과 함께한 손혁. | ||
:: 무엇을 배웠나
톰 하우스 클리닉은 스스로 깨닫게 하는 교육을 체계적으로 풀어 나갔다. 특히 마시는 물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품까지 꼭 찍어주었다.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물을 먹어야 하고, 햄버거는 정 먹겠다면 한 달에 한 번만 먹으라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야구 클리닉이란 곳은 결국 무슨 새 구질을 개발한다거나 파워를 증대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어떻게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지 찾아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몸에 해가 되는 행동과 습관을 버리는 것 자체가 야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목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투구폼 교정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2루 쪽으로 몸이 ‘벌러덩’하고 누웠다가 투수판을 박차고 나가는 폼인데 미국 선수들은 팔을 뒤로 안 뻗고 바로 올렸다가 내리꽂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난 미국식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뒤로 이동한 만큼 앞으로 더 이동하면 된다는 것. 팔의 각도라든가, 중심축인 오른발(손혁은 우완)의 교정 이야기는 없었다. 내가 원래 던지던 폼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좀 더 효과적인 구위 증가를 꾀하는 셈이 된다.
:: 현대가 탐냈다?
현대 플로리다 캠프에서 만난 김시진 감독이 달라진 내 직구와 묵직해진 구위에 상당히 매력을 느낀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현재 두산에 임의탈퇴로 묶여 있으니까 김경문 감독에게 부탁해서 맞트레이드를 요청하고 싶다고까지 하셨을까(김시진 감독은 나중에 기자를 만나서도 손혁 칭찬에 열을 올렸다.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닌 진심이 담긴 ‘러브콜’이었다). 이전 같으면 이맘때쯤 130㎞도 안 나오는 구위가 지금은 145㎞까지 나오니까 그래서 반하신 것 같다^^.
볼티모어가 투수진이 약하긴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갈 때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쨌든 단 한 경기라도 뛰고 싶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단 한 게임이라도 던질 수만 있다면 지금의 수고와 노력이 전혀 헛되지 않을 것만 같다.
김성원 중앙일보 JE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