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용암’ 보고도 흙으로 덮은 꼴
▲ 폭행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대전 시티즌은 6일 현재 3무 3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 ||
그럼 정말 이들의 말처럼 대전의 모든 내홍은 말 한 마디와 악수 한 번으로 끝난 것일까. 아니다. 최 감독과 이 코치의 폭행 사건은 대전 시티즌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잘못된 시간과 장소에서 터진 해프닝일 뿐이다. 그 내막에는 시민구단 대전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감독과 코치진의 싸움이라는 돌발적인 사건에 가려져 버렸을 뿐이다. 대전 시티즌에게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최윤겸 감독은 토요일이었던 지난 3월 24일 밤 이영익 수석코치의 집을 찾아간다. 술을 한잔했던 최 감독은 이 코치집에서 다시 술잔을 앞에 놓고 그동안의 속내를 털어놨다. 최 감독은 이 코치가 외부 세력을 등에 업고 감독 자리를 노린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을 표적으로 험담을 해왔던 세력에 이 코치도 가세했다며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술이 한두 잔 더 들어가면서 감정이 격해졌다. 결국 최 감독이 이 코치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고 피가 흐른 상태에서도 이 코치는 “때리고 싶을 만큼 때리라”며 얼굴을 내밀었다. 일부에서는 유리잔을 던졌다는 설도 있고 최 감독은 잔은 던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등 폭행 상황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이 코치는 아직도 오른쪽 눈썹위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이 코치는 병원 응급실에서 오른쪽 눈썹 위를 열 바늘 이상 꿰맸다. 최 감독은 사건이 터진 뒤 “대전구단을 둘러싼 악소문에 지쳤다. 폭행은 우발적이었다”고 사과했다.
최 감독은 지난해 용병 영입 과정에서 돈을 받았다는 소문에 휩싸였다. 일반적인 관행 수준이었지만 돈을 준 당사자가 누구라는 구체적인 내용도 떠돌았다. 하지만 최 감독은 억울한 음해성 소문이고 결국에는 자신을 쳐내려하는 세력이 꾸민 이야기라고 맞섰다.
이 코치는 폭행을 당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경찰에 최 감독을 고소하려고도 했다. 아내와 어린 자식 앞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점이 이 코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이 코치가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대전구단은 대전 시내 각 경찰서에 고소 여부를 문의하는 등 초긴장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소를 하게 되면 이 코치나 최 감독은 축구계를 떠나야 한다. 물의를 일으킨 지도자가 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 언론에 공개된 최 감독과 이 코치가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모습. | ||
대전은 시민구단이다. 큰 재벌회사가 뒤에 받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전시가 운영의 주체이기 때문에 외부의 입김에 쉽게 흔들린다. 누구라도 치고 들어가면 한 자리를 쉽게 꿰찰 수 있다는 얘기도 대전 구단의 구조적인 취약성의 연장선상이다.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학연, 지연의 관계들이 칡넝쿨처럼 얽혀져 있다.
2003년 대전이 르네상스를 맞았을 때는 염홍철 전 대전시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염 시장은 축구사랑을 시장 재선에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그래도 대전은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며 창단 뒤 최고의 전성기를 달렸다. 2006년 열린우리당이었던 염 시장이 재선에 실패하자 한나라당 박성효 시장이 부임했다. 박 시장이 들어서면서 축구단에 그 여파가 미쳤다. 축구단 사장이 교체되고 새로운 사장이 부임했다. 누구는 누구 사람이고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 득세한다는 말들이 돌았다. 이번에 최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가 알려지자 대전지역 출신의 지도자를 감독으로 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바 있다. 또 현지 지역 언론사 기자가 구단의 고위 간부로 가기 위해 로비를 벌이는 등 시민 구단 대전이 외풍에 얼마나 취약한 지가 다시 한 번 입에 오르내렸다.
최 감독에 대한 교체설도 금품수수의 소문을 등에 업고 힘을 얻는 분위기였다. 도덕적인 결함을 내세워 최 감독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관우 배기종 등 팀의 주축들이 이적을 하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든 대전은 6일 현재 3무3패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홈 관중도 감소하고 있다. 전력보강도 없고 악소문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 감독의 스트레스는 우발적인 폭행으로 표출됐다. 아마 폭행이 없었다면 이보다 더한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짙다.
그러나 대전은 최 감독의 입을 막고 이 코치와 화해하는 장면을 공개하며 문제를 덮어버렸다. 미봉책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투명한 인사와 외부의 입김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서둘렀어야 했다. 축구계에선 대전시가 축구단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변현명 조이뉴스24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