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려 보인다고? 나 깡다구 있어…쉬운 곳 출마해 편하게 국회의원 하는 건 의미 없어”
지난 18일 오후, 20대 총선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서울강남구을)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선거사무소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사법고시에 도전했을 당시 아무도 합격한 사람이 없어 백이면 백,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렸다. 그래도 결국 치과의사 출신 최초로 사법시험 합격의 성과를 냈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길을 많이 걸어왔다. 정치를 시작한 이유도 개인적인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정치 발전에 좀 더 역할을 해야 하겠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 남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누군가는 걸어가야 한다고 믿어왔다. 제가 당선된다면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강남은 지역주의와 계급주의의 상징적인 곳이다. 쉬운 곳으로 가서 국회의원으로 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도전했다.”
―만약 이번에 낙선했다면 계속 도전할 생각이었나.
“당연하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여리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치과의사 출신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깡다구가 있다고 해야 하나. 하하(웃음).”
―최근 인터뷰에서 “이곳(강남을)이 여당 텃밭이라 행사나 모임에 가면 소개도 잘 해주지 않아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고 말씀하셨다. ‘따돌림을 당했다’의 구체적 의미는.
“출마 선언 뒤 처음으로 마을 잔치에 참석했다. 예비후보 신분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가서 얼굴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이곳 행사들은 항상 여당 주도로 이루어졌다. 여당 인사들만 참석을 했다. 지금껏 야당 국회의원 없어서 그랬던 거다. 저는 현직 의원도 아니었다. 잔치에 갔더니 ‘여기 왜 왔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주최 측은 여당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전부를 소개했다. 의원들이 인사말도 했다. 하지만 제겐 인사말은커녕 ‘누가 왔다’는 소개조차 안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은데.
“맞다.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그래도 제가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선거운동을 하는데 행사에 안 왔다고 하면 나중에 욕을 먹는다. 주최 측은 저를 완전히 배제했다. 정말 자리도 안 내줬다. 그 자체가 서러웠다. 멀리서 관중처럼 행사를 지켜보다가 떠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지역 주민들은 제가 그 행사에 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참석자들 한 명, 한 명씩을 붙잡고 ‘이번에 출마한 전현희 후보입니다. 반갑습니다’고 말했다. 다들 의자에 앉아있었다. 행사를 방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무릎을 꿇고 살짝 앉아 숨어 몰래 인사했다. 마이크를 잡고 한 번 소개해주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해주니까(한숨). 인사를 그런 식으로 돌았다.”
―정치 입문 당시 새누리당이 아닌 통합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왜 그랬을 것 같나(웃음). 평소 사람들은 제 경력을 보고 ‘여당 쪽 이미지가 맞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것은 편하고 잘나가기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쓰임새 있는 사람으로 남는 선택은 아니었다. 과거 새누리당의 영입제의가 많았지만 그땐 정치 할 마음이 없었다. 18대 총선 때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당을 어디로 정할 것인지 고민했다. 통합민주당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당이라고 판단했다.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정치를 꿈꿨다면 편하고 익숙한 당을 선택했을 거다. 편한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그런 정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고 싶었다. 남들이 안 하려고 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제 소명의식이자 꿈이었다.”
전현희 당선인은 야당의 험지 강남에 출마한 것에 대해 “쉬운 곳으로 가서 국회의원으로 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남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을 누군가는 걸어가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전 상임고문과 가깝다고 들었다. 손 전 고문이 정계복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저는 손학규 계파가 아니다. 누구의 계파에도 속해 있지 않다. 다만 손 전 고문은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다. 훌륭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 당의 정치적 자산이다. 손 전 고문은 대한민국을 위해 정치에 다시 복귀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도 호남의 지지와 관련해 은퇴를 할 수 있다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 전 대표는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은퇴하겠다”고 했다. 선거 결과, 호남이 지지를 거뒀다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나왔다고 보는 지적이 많다.
“말을 바꾸는 것이긴 하지만 좀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 당시 우리 당 상황이 절박했다. 문 전 대표가 호남 표를 얻기 위해 일종의 배수진을 쳤다. 문 전 대표는 여전히 대선주자 지지도 1위이자 유력 대선주자다. 문 전 대표 덕분에 더민주는 수도권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다. 젊은 층이나 야권 성향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야권은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다. 인재풀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봐야 한다.”
―선거 운동 당시 가족 생각이 많이 났나(전 당선인의 남편 고 김헌법 거창지원장은 2014년 4월 경남 거창 88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유세하는 동안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늘나라에 있는 남편 생각이 났다. 보통 사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문득문득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고 눈물이 날 때가 많았다(전 당선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선거에선 배우자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모습이 중요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남편이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어 서러웠다.”
―사고 충격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사고 이후 정치를 그만두려고 했다. 연애 시절 남편은 정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런데 결혼할 때쯤 남편도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함께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해서 남편과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이 사고를 당한 뒤엔 정말 죽고 싶었다. 죽고 싶었는데 문득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라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국 마음을 추스르며 의미를 찾았다.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대한민국을 위해 바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