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중 1명에 칼날 겨눠…‘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검찰은 신속한 선거사범 수사를 강조하며 특별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15일 대검찰청 공안부는 20대 총선 당선자 300명 가운데 104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중 1명은 기소됐고 5명은 불기소 처분돼 현재 수사 중인 당선자는 ‘98명’이다. 대검 관계자는 “어떤 당선자들이 수사 대상에 올라와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줄 순 없다. 아직 혐의를 밝힐 단계는 아니다”라며 “기소한 사건은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하여 불법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부 당선자들은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와 압수수색으로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가 알려지기도 했다. 가장 이목이 쏠리는 이는 국민의당 박준영 당선자(전남 영암·무안·신안)다. 박 당선자는 국민의당 입당 전에 신민당을 이끌면서 당 사무총장이었던 김 아무개 씨(현재 구속)로부터 수차례 수억 원의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당선자는 20일 입건됐으며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다.
4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당선자(수원무) 역시 수사 대상에 올라있다. 김 당선자는 지난 2월 수원의 한 산악회 회원 30여 명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같은 당인 조병돈 이천시장이 2만 원 상당의 쌀을 회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파악됐다. 김 당선자는 사전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 시장은 제3자 기부행위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이밖에도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새누리당 홍일표 당선자(인천 남구갑),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새누리당 박찬우(천안갑), 무소속 이철규(강원 동해삼척) 당선자, 선거법 위반 혐의로 무소속 윤종오 당선자(울산 북구) 등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총선 직전과 직후 이들 당선자 사무실과 측근을 압수수색 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그만큼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이번 선거사범 수사가 유독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는 평도 있다. 그 배경에는 김수남 검찰총장의 의중이 숨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총선을 앞두고 김 총장은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 자리에서 “17대부터 19대까지 모두 36명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선거범죄로 신분을 잃었는데, 당선무효형이 확정되기까지 평균 20개월이 걸렸다는 보고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언급을 하며 신속한 선거사범 수사를 강조했다고 한다. 검찰은 현재 특별근무체제를 유지하면서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선거일까지 발생한 선거사범보다 선거일 이후, 공소시효 완성일까지 사이에 입건되는 선거사범의 비율이 더 높다. 공소시효 만료일인 오는 10월 13일까지 특별근무체제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대 의석수가 달린 경기 지역이 선거사범 수사의 키로 떠올랐다. 출처 = 네이버
무엇보다 신속한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어느 지역의 어떤 당선자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지역은 역시 최대 선거구가 있는 수도권이다. 특히 경기 지역은 가장 많은 당선자들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수원지검, 의정부지검, 경기도 선관위 등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으로 입건된 당선자는 총 ‘20명’이다. 지역별로 수원지검 관할(성남, 안산, 안양, 여주, 평택지청) 등 ‘경기 남부’ 지역은 16명, 의정부지검 관할(고양지청) 등 ‘경기 북부’ 지역은 4명이다. 경기 지역은 총 60곳 선거구 중 41곳을 야권이 휩쓴 바 있다. 그만큼 야권 당선자들의 상당수가 수사 대상에 올랐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역구의 거의 대부분에 달하는 당선자들이 수사대상에 오른 경우도 있다. 인천이 대표적이다. 인천지검과 인천선관위에 따르면 총 당선자 13명 중 ‘10명’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현재까지 파악된 해당 당선자는 새누리당 홍일표(인천 남구갑), 이학재(인천 서구강화군갑), 더민주 신동근(인천 서구을), 홍영표(인천 부평구을), 송영길(계양을) 당선자 등이다. 이학재, 신동근, 홍영표, 송영길 당선자는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낙동강 벨트’가 속해있는 울산 지역구는 당선자 6명 전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 고발당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특히 검찰은 이 중 무소속 윤종오 당선자(울산 북구)와 관련 3차례나 압수수색을 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옛 통합진보당(현재 해산) 출신인 윤 당선자는 “두 차례 압수수색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한 검찰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엮어보려고 하고 있다. 정치탄압이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다른 ‘낙동강 벨트’가 속해 있는 부산은 당선자 18명 가운데 4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전통적인 스윙보터 지역인 충청-세종 지역구(총 27석)에서는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총 10명의 당선자가 수사 중이거나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당이 8석 중 6석을 휩쓸어 압승을 거둔 강원 지역구도 최소 3명 이상의 당선자들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구도가 명확한 TK(대구경북)와 호남의 경우 당선자들이 선거사범에 오른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야 텃밭이기에 지역구 내 치열한 경쟁구도가 잡히지 않아 선거전이 다른 지역보다 다소 차분하게 전개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야권의 경쟁구도가 잡힌 호남은 5명의 당선자(광주지검 3명, 전주지검 2명)들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물론 향후 선거사범으로 수사선상에 오를 당선자들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수사뿐 아니라 경찰 차원에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선거법 위반 혐의가 밝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경우 특히 유례없이 선거전이 과열돼 선거사범이 급증했다는 게 검경과 선관위의 판단이다. 실제로 19대 총선과 비교해 선거사범 총 입건자는 ‘355명’이 증가했다.
향후 수사방향이 어떻게 흐를지도 관심거리다. 검찰은 “소속 정당이나 당락, 지위고하를 떠나 범죄행위 그 자체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관한 어떤 시비도 남기지 않겠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된 상황에서 야권은 검찰 수사에 대한 예민한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가까스로 제1당을 차지한 더민주는 1당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엿보인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재보궐 선거가 대거 이뤄질 경우 낙선한 거물급들이 잔뜩 벼르고 있는 여권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야권에 대한 표적 수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는 최대 변수로 ‘수도권’과 ‘야권단일후보’ 수사를 들고 있다. 야권(더민주 40석, 정의당 1석)이 휩쓴 경기 지역에 많은 당선자들이 수사선상에 올라와 있고, ‘야권단일후보’ 명칭을 둘러싸고 유무죄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야권단일후보’ 명칭 사용 문제가 불거져 고소, 고발전이 이어졌다. 국민의당을 제외하고 더민주와 정의당 사이에서만 단일화가 이뤄졌는데 선거공보에 ‘단일후보’ 명칭을 사용했다며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오른 것이다. 현재 더민주 송영길, 홍영표, 신동근, 정의당 노회찬 당선자 등 야권 당선자 4명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검 관계자는 향후 수사 방향에 대해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단계라 말해 줄 것은 없다. 야권단일후보 수사의 경우 원칙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금은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는 단계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