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수는 숫자일 뿐…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일곱 살, 야구를 만나다
아버지 : 석민아, 아빠랑 야구 보러 갈래?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드나들던 야구장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우연히 전국 최강 구리 리틀야구단의 테스트를 받게 된다. 합격이다.
윤석민 : 아빠! 저, 야구 할래요.
아버지 : 뭐? 넌 아직 어리고 운동보다는 공부할 나이야, 공부.
떨떠름해 하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윤석민은 야구를 시작한다. 그것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리고 2004년 야탑고 3학년, 2005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에서 기아 타이거즈에 지명된다.
드디어 기회가 오다
2005년 기아에 입단한 윤석민은 마무리 신용운이 부상으로 빠지자 신인에게는 좀처럼 오지 않는 마무리 보직을 맡게 된다. 마무리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민은 공격적인 배짱과 승부근성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 투수로 데뷔한다.
2006년 윤석민은 셋업맨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주전 마무리 장문석의 연패로 깔끔하고 공격적인 투구의 윤석민이 마무리 바통을 이어받는다. 평균자책 2.28. 자신감과 패기 넘치는 스무 살 청년 윤석민은 슬그머니 선발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2007년, 기회가 온다. 2006년 선발이었던 한기주의 마무리 지원과 기아의 1선발 김진우의 갑작스런 난조 때문에 윤석민이 치고 나온 것이다. 윤석민은 스스로 운이 진짜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코칭스태프의 생각은 다르다.
서정환 감독 : 공 빠르지, 변화구 날카롭지, 체인지업 좋지. 페이스 좋지!
김봉근 코치 : 석민이는 긴장도 안하고 마운드에 서도 편안하게 하니까 잘 할거다. 천천히 네 공만 던지면 돼.
파란만장 선발등판기
2007년 4월 6일. LG와의 개막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등판한 날, 6.1이닝 4삼진 6피안타 3볼넷 1실점(비자책). 그야말로 환상적인 피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졌다!
4월 11일 현대전. 5이닝 3삼진 9피안타 1볼넷 5실점(4자책). 질 만했다.
4월 17일 SK전. 7이닝 7삼진 단 1피안타 2볼넷 1실점(비자책). 정말이지 미칠 듯한 포스를 뿜어낸 피칭이었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안타 8개를 치고도 1점도 뽑지 못한 타선 때문이다. SK에게 1안타 승을 내준 이날 경기가 윤석민은 가장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4월 22일 광주 구장, 두산전. 149㎞의 빠른 직구와 130㎞대 슬라이더를 섞어 던진 윤석민은 9이닝 3안타 2사사구만 내주고 삼진 4개를 솎아내며 무실점으로 틀어막는다. 잘하면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경기였지만 7회 1사 두산의 김동주가 2루타를 때린다. 윤석민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 잘 던지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윤석민. 하지만 그는 스물한 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연합뉴스 | ||
윤석민은 그런 남자다. 그런 투수다. 김동주 이후 안타 2개를 더 맞지만 윤석민은 단 1명의 주자도 3루까지 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3 대 0으로 윤석민은 3수 끝에 시즌 첫 승을 낚았고, 그것은 올 시즌 8개 구단 투수 가운데 첫 완투 겸 완봉승이기도 했다. 그 후로 윤석민은 네 번의 선발 등판을 더 한다. 4월 27일 한화전 승패 없음 / 5월 2일 롯데전. 타자들 4안타 치고 무득점 1자책 0 대 5 패배 / 5월 8일 LG전 패배 / 5월 13일 SK전 9이닝 5피안타 2자책으로 최다 패전투수가 되었다.
선배들 : 수고했다. 미안하다. 다음엔 뭐 잘 되겠지.
평균 7이닝 이상을 ‘3투’ 3종 세트인 ‘호투 역투 쾌투’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민은 패전 투수가 되어야만 했다.
최희섭과 경기에 나서다
2007년 5월 19일. 잠실 두산전. 기아 응원석에는 ‘석민이 좀 도와주쇼잉~’이라는 알림 걸개도 있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최희섭이었다. 최희섭이 호랑이가 되어 데뷔전을 치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전.
최희섭 : 내가 잘 쳐줄게, 석민아, 화이팅!
하지만 5타수 무안타였던 최희섭 대신 김상훈이 2회 적시타로 선제점을 뽑아낸다. 선제점이라니! 윤석민의 파란만장 선발등판기 초유의 선제점이 나온 것이다. 이어진 5회, 김종국과 장성호의 솔로 홈런. 6대 0으로 윤석민은 선발 데뷔 후 가장 편안하게 시즌 2승을 기록했다.
선배들 : 수고했다. 오늘 좋았다. 2승 축하해. 이제부터 잘 풀릴 거야!
이제부터 잘 풀릴 거야. 이 얼마나 고맙고 기분 좋은 소리란 말인가. 그래, 메이저리그 거포 최희섭도 왔겠다, 윤석민은 기운이 난다.
스물한 살의 에이스
“선발이라고 크게 의미 안 둬요. 못하면 욕먹고, 의식하면 생각만 많아지거든요. 1승하고 나서 다승왕, 평균자책 타이틀 욕심난다고 했었는데 그건 욕심인 것 같고,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구요.
지금 모자 안에 써둔 말이요? 가자! 아무 의미 없어요^^;
세상 천지에 아무 의미 없는 게 있을까? 수백 페이지에 달할 자신의 선발 커리어 첫 장을 쓰기 시작한 윤석민이 가고자 하는 ‘그곳’은 어디일까. 볼수록 매력 있는 ‘볼매남’, 기아의 완소 에이스, 윤석민.
김은영 MBC라디오 아이러브스포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