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놓치면 생명 위험, 당장 병원 가라”
▲ 전 농구 국가대표 센터 김영희 씨.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홍만은 지난 6월 4일 귀국하면서 ‘말단비대증’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정밀진단을 받을 계획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에이전트 측은 “뇌와 어깨 등에 종양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미리 알고 있던 것이고 미국에서도 지정병원 외의 다른 병원에서는 경기에 출전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특히 “성장판이 5년 전에 멈췄고 원체 거인인 탓에 종양의 크기가 큰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김영희 씨는 진심어린 우려를 나타냈다. “최홍만 씨의 심정을 너무 잘 안다. 나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87년에 뇌에 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충격이었다. 뇌수술을 받고 바로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최홍만 씨에게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은퇴나 다름없는 치료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돈이나 명예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무조건 병원으로 가 진찰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말단비대증은 뇌하수체에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종양(혹)이 생겨 성장호르몬이 많이 나오고 이것으로 얼굴과 손발 등 신체의 말단부터 점점 커지는 질환이다. 국내에서는 김영희 씨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말단비대증 자체는 양성질환이지만 얼굴 변형, 심장비대, 심혈관 질환 등을 통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그래서 조기 발견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최홍만. | ||
김 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최홍만이 말단비대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거인이라고 해서 모두 말단비대증은 아니지만 첫 번째 뇌 속에서 종양이 발견됐고 둘째 부모가 평범한 일반인으로 유전적으로 몸이 클 확률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씨는 “농구의 하승진이나 하은주 선수도 안심할 수는 없지만 부친 하동기 씨가 유명한 농구선수로 워낙 키가 컸다. 하 씨는 말단비대증에 걸리지 않았다. 또 말단비대증 검사를 해 이상이 없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 하지만 최홍만 씨는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학계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내분비학회의 김성운 교수(경희대)는 최홍만에게 정밀진단을 권한 바 있고, 이번에도 언론을 통해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경내분비 전문의들은 큰 우려를 나타냈다.
부천카톨릭성가병원의 유순집 교수는 “직접 환자를 진찰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일단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에이전트와 최홍만 씨의 기본 생각에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5년 전에 성장판이 멈췄기에 아무 문제 없다’는 에이전트의 얘기는 의학적으로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말단비대증은 당연히 성장이 멈춘 후에 발생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또 통증이 없이 건강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꼭 아파야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 조기치료를 하자는 것인데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이미 검사를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순집 교수는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의학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나름대로 확실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최홍만을) 링에 올리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의사들이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진료를 권하는 것이다. 국위선양이나 돈보다도 사람 생명이 더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말단비대증은 발병 초기 큰 통증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오히려 통증을 느끼면 치료시기가 늦은 경우가 많다. 김영희 씨는 “서서히 통증이 나타난다. 관절통부터 시작해 신체 곳곳에서 작은 마비 증세가 보이고 또 시력이 나빠진다. (최홍만 씨는)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유병철 스포츠 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