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발 ‘뇌물 폭풍’ 여의도로 GO
▲ 전북 익산의 농기계생산업체 H사에서 지역 관가에 제공한 뇌물의 지출결의서 일부. | ||
K 씨는 지난해 12월 회사 대표인 A 씨에 대해 뇌물 공여 혐의로 군산지청에 진정서를 접수했지만 A 씨는 물론 뇌물을 수수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검찰은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했다. 한편 이 회사는 120억 원 대 부도사건으로 현재까지 송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소송 뒤에 열린우리당 실세 의원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란 의혹도 나돌고 있어 지역 민심은 흉흉하기까지 하다.
전북지역에선 꽤 알려진 중소업체인 H사는 지난 2003년 2월 120억 원대의 고의부도사건으로 회사 대표인 A 씨와 당시 경리과장이었던 K 씨 등 이해관계자들이 송사를 벌이면서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군산지청의 사건 은폐 의혹, 익산시청 등 지역 공무원들에 대한 대가성 뇌물공여 및 국가 공적자금 비리의 축소 수사 의문 등이 제기되고 있는 것. 여기에 A 씨의 친형이자 지역 경제단체 회장인 B 씨의 땅투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군산지청은 A 씨와 B 씨가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10여 개의 사건에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내려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 관가 주변에선 지역경제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고 있는 B 씨의 입김이 검찰 수사에 보이지 않은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지역 기자들이 사건 취재에 들어갔지만 해당 언론사 안팎에서 적잖은 외압과 회유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8월 31일 익산에서 기자와 만난 K 씨도 “당초 상당수의 지역 기자들이 비밀장부 등 사건 자료를 달라며 취재에 열을 올렸지만 지금은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기자도 있다”며 “일부 친분 있는 기자는 외압으로 공식적인 취재는 불가능하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적극 돕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K 씨는 “언론사나 관공서, 기업체 등이 상호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지역특성과 그 한계가 잘 반영된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K 씨는 또 “H사가 시청과 세무서 등 관공서에 거액의 대가성 뇌물을 수년간 지불해 왔음에도 회사 대표와 해당 공무원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국가청렴위 등 국가기관에 청원과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며 “부패한 공무원과 기업인이 결탁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행위들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비밀장부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H사의 비밀회계 장부에는 수년간 지역 관공서에 뇌물을 전달한 정황이 자세히 적시돼 있었다.
장부에는 지난 2001년 세무서 직원에게 800만 원을 건넨 것을 비롯해 시청, 검찰과 경찰, 소방서, 병무청 등 지역 관공서와 금융기관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정기적으로 지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뇌물을 받은 관공서가 H사에 직간접적으로 편의를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H사와 세무서의 유착 의혹은 대표적인 사례다.
K 씨가 작성한 청원서에 따르면 A 씨는 2001년 6월경 ○○세무서의 세무조사 사실을 인지하고 현금 800만 원을 박카스 상자에 담아 ○○세무서 간부에게 전달한 후 H사는 당시 3억 원 정도로 추산되던 추징금 대신 8000만 원 가량만 납부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이후 H사는 명절 때마다 정기적으로 세무서에 뇌물을 상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A 씨는 지역의 한 언론사에 뇌물을 건넨 사실을 시인했지만 광주지방국세청 관계자는 검찰 수사 결과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비밀장부에는 관공서에 상납한 뇌물 액수와 목적이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돼 있다.
K 씨는 또 A 씨가 H사에 투입된 공적자금 5000여 만 원 중 3000여 만 원을 횡령한 후 조사를 나온 담당자에게 100만 원의 대가성 뇌물을 제공했다며 이 같은 공금횡령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해 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도 전주지검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전주지검은 군산지청에 수사기록 등 당시 사건 자료를 요청하는 등 공무원 뇌물 로비 사건에 대해 사실상 수사에 착수했다.
이처럼 전주지검이 뇌물사건 등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H사 송사건과 관련, 지역 정가 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여권 실세 개입설’ 의혹도 파헤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검찰(군산지청) 진술서에도 여권 실세인 Q 의원의 실명이 거론된 것으로 확인됐다. A 씨의 부인이 Q 의원과의 친분을 내세워 사건과 관련한 청탁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물론 진술서 내용만으로는 청탁 여부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A·B 씨와 Q 의원의 친분관계를 미뤄 보거나 A 씨 부인의 장담대로 검찰 수사 결과가 도출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석연찮은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이야기다.
이와 관련, K 씨는 “IMF 외환위기 당시 자금난을 겪었던 A 씨가 정부 고위직에 있었던 Q 의원에게 부탁해 10억여 원을 긴급 대출받은 사실이 있다”며 “이번 사건 배후에도 Q 의원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K 씨는 또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부패 공무원 청산 차원에서 정치권(야당)에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혀 지역 뇌물 스캔들이 중앙정치 무대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을 안고 다시 칼을 뽑아든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비난을 극복하고 뇌물 사건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번에도 용두사미식 수사로 막을 내릴지 전주지검의 수사 추이에 지역 정·관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H사 비밀장부에 적시된 주요 뇌물 청탁 사례
날짜
|
관공서
|
액수
|
청탁내용
|
1999.11.11 | ○○ 검찰청 |
2,000,000원
|
사건관련 접대비 |
2000.8.8 | ○○ 기술신보 |
1,000,000원
|
접대비 명목 |
2002.2.7 | ○○ 지서 |
100,000원
|
명절시 담당에게 주었던 관행 |
2002.2.7 | ○○ 시청 |
100,000원
|
명절시 담당에게 주었던 관행 |
2002.3.27 | ○○ 시청 |
3,000,000원
|
인허가관련 |
2002.5.3 | ○○ 시청 ○○과 |
500,000원
|
지방세관련 |
2002.5.16 | ○○ 전력 |
500,000원
|
회사의 제품 심야전기보일러 인허가관련 |
2002.5.24 | ○○ 시청 |
500,000원
|
인허가관련 |
2002.7.18 | ○○ 시청 |
300,000원
|
○○과 담당에게 지방세관련 |
2002.8.26 | ○○ 소방서 |
200,000원
|
소방안전관리관련 |
2002.10.26 | ○○ 경찰서 |
500,000원
|
외국인산업연수생관리 관련 |
2002.10.31 | ○○ 파출소 |
300,000원
|
명절관련 관행 |
2002.11.30 | ○○ 시청 |
500,000원
|
회사의 양도소득세 관련 |
2002.12.30 | ○○ 중소기업청 |
300,000원
|
회사 상무가 직접 지급 |
2003.1.6 | ○○ 전력 |
500,000원
|
회사의 제품 심야전기보일러 인허가관련 |
2003.1.18 | ○○ 면사무소 |
500,000원
|
회사의 콘테이너 건물에 관련 |
2003.1.28 | ○○ 은행 |
2,000,000원
|
대출관련 청탁으로 지점장에게 |
2003.1.30 | ○○ 세무서 |
300,000원
|
관행상 사장이 직접 지급 |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