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기술 완성단계” 방심했다가 큰 코 다칠 판
북한이 지난 4월 23일 발사했다고 공개한 SLBM 발사 모습. 북한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지난 4월 23일 동해상에서 북한의 발사체 실험이 단행됐다. 해당 발사체는 북한이 시시때때로 뭍에서 쏘아올린 그 흔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수중에서 솟아올랐다. SLBM이었다. 이전에도 북한은 SLBM 관련 실험을 진행해왔다. 허나 그때마다 조작설이 제기됐다. 특히 발사체가 수중 잠수함에서 사출된 것이 아니라 발사대를 설치한 일종의 바지선에서 발사됐다는 내용은 물론 아예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조작됐다는 설까지 판을 쳤다.
이번은 아니었다. 어떤 조작의 흔적도 없었다. 발사체는 수중 잠수함에서 사출된 것이 분명했다. 발사체의 비행거리는 30km에 불과했다. 발사체를 쏘아올린 잠수함의 위치 수심이 감지가 어려운 50m 아래인지, 그저 해면 바로 아래인지는 확인이 불가했다. 허나 북한의 기술력이 상당 수준에 올라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국방부를 비롯한 우리 정부는 비행거리를 두고 해당 실험을 ‘실패’로 규정하고 있지만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모양새다.
반대로 민간 영역에 있는 일부 군사 및 무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비록 이번 발사체의 비행거리가 30km 안팎이지만 북한은 이미 상당 수준의 중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SLBM은 탄두 소형화와 탄도 발사체 등 핵기술의 최종단계다. 이미 사출 단계까지 나아갔다는 것은 북한의 해당 기술이 거의 완성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상대 공격을 방어하는 전술은 3단계다. 첫째가 감지, 둘째가 교란, 셋째가 무력화다. SLBM은 이 모든 방어 전술을 뛰어 넘는다는 평가다. 앞서 관계자가 경고했듯 전문가들이 SLBM을 두고 핵 전략전술의 진수이자 마지막 단계라 일컫는 이유다.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일반적으로 탄도미사일 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떠올린다. ICBM은 안정된 지반을 토대로 대륙에서 대륙으로 쏘아 올리는 핵 발사체다. SLBM은 쉽게 말해, 상당한 깊이의 해면 아래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이다. ICBM과 달리 SLBM은 해상이라는 지극히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 그것도 고정되지 않은 잠수함에서 상대에 타격을 가한다. 기존의 핵탄두 및 발사체 기술과 더불어 주변 환경을 예측하는 수학적·전자적 장치와 발사체의 단계적 사출에 이용되는 고도의 기계적 장치까지 ICBM보다 두세 걸음은 더 나아가야 한다. 이 기술을 공식적으로 보유한 국가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에 불과하다.
북한이 해당 기술 개발에 힘을 쏟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부터다. 북한이 기존의 조직을 확대 개편한 전략로켓사령부를 중심으로 기획됐다. 북한이 이 기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SLBM의 특징과 효과 때문이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이에 대해 “잠수함에 탑재된 발사체는 외부의 감시를 피하기 적합하다. 또한 대륙에서 쏘아올린 초발탄이 실패하거나 상대 방어체계에 잡히더라도 SLBM의 후속탄은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SLBM은 일단 정박지(도크)를 떠나 해면 밑으로 잠행을 시작하면 적으로부터 발각이 어려워진다.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그린파인’ 레이더는 기존의 지상 미사일을 감지하는 데 적합하지, 적 잠수함을 감지하는 데는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초발탄 이후의 후발탄 내지는 상대 공격에 대한 보복탄으로서 효과가 크다. SLBM이 해면 아래 잠행을 한다는 확인 혹은 흔적만으로도 상대편은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상대 공격 억제 기능도 훌륭하다. 핵을 탑재한 잠수함이 서울 등 대도시를 목전에 둔 우리 영해 상에서 잠행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문제는 북한이 다음 단계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군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북한의 3000t급 대형 잠수함이다. 공식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현재 북한은 3000t급 잠수함을 이미 보유하고 있거나 최소한 건조를 진행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SLBM기술을 실현하기 위해선 발사체를 최소한 2~3개 설치할 수 있는 3000t급 잠수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의 이 대표는 “북한은 일반적인 3000톤급을 넘어 2000톤급 이하의 소형 잠수함에도 SLBM기술을 응용하려고 애쓴다는 얘기가 내부에서 돌고 있다”며 “쉽진 않겠지만, 이것마저 북한이 성공한다면 우리에겐 큰 재앙”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기존 기술인 대형 잠수함 적용에서 더 나아가 소형 잠수함에도 적용을 꾀하고 있다는 주장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앞서의 국방위 관계자는 “현재 우리 군도 북한의 SLBM기술 개발에 대비하고 있다. 이를 감지할 수 있는 탄도조기경보레이더를 조기 도입하기 위해 투자를 계획 중이다. 다만 북한의 기술 완료 시기가 약 3년 정도로 예상될 때 늦은 감이 있다”라며 “매번 우리 군과 정부는 북한의 군사기술 진보를 목격할 때마다 폄훼하거나 방심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카피 기술은 세계적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무기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얼추 비슷한 기술을 확보해왔다. ICBM이나 SLBM도 비슷하다.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고 경고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