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엄마 ‘하늘여행’ 떠나고 목사아빠 ‘하늘문턱’ 넘을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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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신지애의 아버지 신재섭 씨는 총신대를 나와 91년 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 안수를 받은 현직 목사다(공식직함은 광주 미문교회 협동목사). 전도사 시절인 88년 전남 영광의 화원성산교회에서 봉사하던 중 사택에서 얻은 첫 딸이 바로 신지애다(출생지가 교회인 셈). 91년부터 4년간 광주 서문교회에서 부목사를 지냈고, 개척교회를 하다 98년 성서연구를 위해 영암으로 다시 내려갔다. 이 때 교회 옆에 있던 영광 원자력발전소 직원 골프연습장에서 신지애가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광주가 고향인 신재섭 씨는 재수를 한 끝에 1980년 전남대 수의대에 입학했다. 중학시절 배드민턴 선수를 하는 등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광주일고 때는 응원단장을 하기도 하는 등 활달한 성격이었다. 이러니 운명의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도청사수대를 자원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신지애의 할아버지가 용케 신 씨를 찾아내 옆집 연탄 창고에 가둔 ‘덕’에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광주의 충격 후 학교를 그만두었고 이후 광주신학교에 편입한 뒤 총신대를 졸업했다.
“대학 때 지인들은 이렇게 말했다.‘야, 예수님 정말 대단하다. 너 같은 녀석을 목사로 만들었으니 말이다’라고.”
2003년 11월 8일. 목포의 큰 이모 환갑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신 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큰딸 지애를 데리고 광주 친구의 골프연습장에서 훈련 중이었다. 훈련 후 목포로 이동할 예정이었고 영광에 있던 아내는 둘째딸과 막내아들을 데리고 따로 움직였다. 그런데 덤프트럭이 아내가 타고 있는 차를 덮쳤다. 영광교회 교인들 사이에서 ‘천사’로 불릴 정도로 성품이 고왔던 아내는 바로 세상을 떠났고 두 동생 지원(16)과 지훈(10)은 중상을 입었다. 병원비로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쏟아 부은 것은 물론이고 신 씨와 지애는 병원에서 숙식을 하다시피 1년을 살았다.
엄마는 큰딸이 ‘박세리 신화’를 목표로, 박세리보다 더 힘들게 운동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지금은 프로대회에서 밥 먹듯 우승하지만 당시 신지애는 광주 전남 여자중등부의 최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전국대회 트로피는 차지하지 못했다. 어렵게 운동한 딸이 우승하는 것을 함께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일찍 세상을 떠난 천사표 아내를 닮아서일까, 아니면 그토록 사랑스런 아내와 엄마를 일찍 불러간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내려서일까. 신 씨의 세 자녀는 너무도 잘 자랐다. 신지애는 2005년 아마추어로 프로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2006년, 2007년 국내 여자그린을 싹쓸이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US오픈 등 외국대회에서도 발군의 기량과 천사표 매너로 화제를 모았다. 여기에 신갈고 1학년인 지원은 학원은커녕 골프 때문에 바쁜 아버지와 언니의 도움 없이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다. 막내 지훈은 목사만 6명인 집안의 대를 잇겠다며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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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딸의 캐디를 보던 신재섭 씨(왼쪽)는 신지애의 홀로서기를 위해 백을 메지 않고 있다. | ||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영광교회는 물론이고 각종 개척교회에 수천만 원씩을 보냈고 어려운 형편의 목회자에게는 매달 50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신학생 16명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했고 각종 선교단체와 이웃돕기시설에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첫 5관왕(KLPGA대상, 신인왕, 상금왕, 다승왕, 최소타수상)과 최초 60대 타수(라운드 평균 69.72타) 등 신기원을 세운 신지애는 올해 역시 눈부신 기록인 한 시즌 7승을 달성하며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신 씨는 겸손해하고 신지애는 배고파한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지난 6월 한국오픈 때 지애가 캐디를 보던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샷이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아빠가 지적할 것 같아서’라는 답이 나왔다. 그 후 더 이상 백을 메지 않고 있다. US오픈과 브리티시여자오픈도 혼자 다녀왔다. 다행히 홀로서기를 잘해내고 있다. 엄마를 닮아 성품이 좋아서 자만하지 않고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할 것으로 본다.” 목사님 아버지답다.
인터뷰 말미에 나타난 신지애에게 아빠 몰래 “아빠와 관계가 좋냐?”고 우문을 던졌더니 특유의 단추구멍 눈웃음을 지으면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죠. 원래 아빠랑 딸은 그렇잖아요”라는 현답이 나온다. 신지애는 “다들 대단하다고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10월 19일 한국에서 열리는 미LPGA대회(코오롱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가족사를 이처럼 상세하게 공개하기는 처음이라는 신재섭 씨는 “언제 기회가 되면 우리 가족 얘기를 책으로 쓸 생각이다. 목사로서 선교는 물론이고 주니어 골프선수들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과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판단되면 꼭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애의 가족 스토리는 제법 훌륭한 신앙간증서이자 소설책이 될 것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