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중계동 소재 청암중·고등학교(교장 추세영)는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을 맞아 좀 더 뜻 깊은 시간을 마련하기 위한 취지로 지난 4일 교내 대강당에서 ‘사제 세족식’을 진행했다.
청암중·고등학교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을 대상으로 2년에 3년 과정을 검정고시 없이 졸업하는 학력인정 학교. 어린 시절, 제 나이에 공부의 기회를 놓친 늦깎이 학생들이 모여 만학의 꿈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기획한 이날 사제 세족식에는 중학교 1학년 새내기부터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까지 약 150명의 학생과 교사가 참여해 이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정을 나눴다.
교사들은 별도의 장소에 미리 마련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고 각 반별로 학생들의 발을 정성껏 씻겨주었다. 특별히 제작한 카네이션 브로치를 가슴에 달아주며 늦깎이 학업을 응원하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멋쩍은 미소와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서로 포옹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
중학교 1학년 김길자 씨는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발을 씻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정말 감격스럽고,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선생님께 받는 가르침만 해도 감사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다짐이 든다”고 말했다.
이춘례 씨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누가 내 발을 이렇게 씻어준 적이 없다.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진심이 오롯이 전해져 자꾸 눈물이 난다.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한 경험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이 고마움을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모진 인생이었지만,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감동”이라고 밝혔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교사들도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인 학생들의 발을 닦아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만큼은 제자가 아닌, 어버이였다.
교사 김수연 씨는 “생각보다 발이 거칠어 놀랐다. 고생하신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학생들에게 대접을 받기보다, 오히려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고 조금이나마 보답해드릴 수 있는 기회여서 의미 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교사 지성미 씨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학생들의 발을 씻겨주며 한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남은 생애도 더 건강하시길 바란다. 비록 조금 늦게 배움의 길에 들어섰지만, 각자의 목표를 위해 학업에도 더욱 열중하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에 앞서 열린 ‘장한 어버이상 및 효행상 시상식’에서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자녀교육에 헌신한 70대 이상 학생과 남다른 희생정신과 부모에 대한 지극한 공경으로 타의 모범이 된 학생 29명이 상을 받았다.
추세영 교장은 훈사에서 “가정은 소중한 안식처이며 사랑이 넘쳐나는 전당이다. 가정의 화목은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를 훌륭하게 성장시켜 행복한 가정을 이룬 여러분이야말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가꾸고 참사랑을 실천한 장한 어버이”라며 각별한 존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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