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재력가 모녀 미스터리
이 씨 모녀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진 배경에는 ‘조계사 성역화’ 사업이 있다. 이 씨 모녀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 토지(527m²)와 2층짜리 저택(370m²)을 소유하고 있다. 정원이 딸린 이 저택의 시가는 120억 원에 달한다. 사진은 종로구 저택.
대지면적 668m², 연면적 1323m²의 이 건물은 토지 공시지가만 33억 5000여만 원에 이른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개별 주택까지 포함한 건물 총 매각가는 120억 원을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모친 이 씨는 1987년 9월 이태원 토지를 매입했다. 같은 해 딸 명의로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도산대로변 토지(대지면적 187m²)를 사들였다. 3층짜리 건물(연면적 418m²)도 새로 올렸다. 당시 딸의 나이는 스무 살에 불과했다.
1986년 이 씨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한 벨기에 대사관 인근에 3층짜리 고급 단독주택(연면적 385m²)을 세웠다. 부촌이 밀집한 이 지역 인근에는 대기업 임원 등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 이 주택의 공시지가는 21억 3000여만 원, 토지는 19억 7000여만 원에 달했다.
이 씨 모녀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현대아파트, 용산구 서빙고동의 신동아아파트도 각각 1채씩 소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 모녀가 어떤 경로로 이 같은 재산을 축적했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단 2011년까지 모친 이 씨와 여러 차례 만났던 조계사 신도 A 씨는 “시아버지가 해줬다고만 할 뿐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며 “일본 쪽에도 재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씨 모녀는 자신들이 취득한 부동산을 등기하는 과정에서 일본 대표 부촌지역인 도쿄 신주쿠, 메구로 등을 주소지로 등록했다.
그런데 법률상 이들 모녀의 직계가족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친 이 씨는 남편과 오래전 이혼했으며, 차녀 홍 아무개 씨(46)와는 호적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6월 딸 이 씨는 친생자관계부존재 판결을 통해 자신의 성을 홍 씨에서 이 씨로 바꿨다. 이는 이 씨 모녀 외에 상속권자가 없을 가능성과 연결된다. 딸 이 씨는 미혼으로 알려졌다.
이 씨 모녀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진 배경에는 ‘조계사 성역화’ 사업이 있다. 이 씨 모녀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 토지(527m²)와 2층짜리 저택(370m²)을 소유하고 있다. 정원이 딸린 이 저택의 시가는 120억 원에 달한다. 조계종은 4년 전부터 조계사와 담벼락을 마주 본 이 씨 모녀의 저택을 매입하고자 했다. 특히 이 저택은 최근 ‘조계사 주변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도 지정됐다.
조계종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4년 넘게 이 씨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며 “일본 쪽 네트워크를 활용해 도쿄 주소지를 탐문했지만 ‘그런 사람은 여기 없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불교계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관계자는 “일본에 거주하는 전 남편과도 접촉했지만 ‘연락이 끊긴 지 10년 넘었다’는 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씨는 2003년 자동차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 국내 법인에 한남동 주택을 임대해주기도 했다. 계약 조건은 월 800만 원이다. 사진은 한남동 주택 전경.
모친 이 씨는 2011년부터 재산세와 건강보험료, 수도요금 등을 체납하고 있다. 딸 이 씨는 2010년 이후 납세 기록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딸 이 씨는 앞서 ‘고궁’이란 부동산 임대 회사를 설립한 바 있다.
모친 이 씨의 휴대전화는 번호가 없는 상태다. 딸 이 씨의 휴대전화는 지난달까지 착신이 정지돼 있다가 최근 통화권을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휴대전화는 한국명 ‘김재정’이라는 사람이 관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종로구 저택에는 부동산 관리업체 ‘G Square Property Management Ltd’가 써 붙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안내문에는 김재정이란 이름과 함께 이 씨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다.
미국 소재의 이 회사 대표번호로 전화하자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자동응답이 돌아왔다. G Square Property Management Ltd가 사용한 국내 우체국 사서함은 이용 실적이 없어 현재는 폐쇄됐다. G Square Property Management Ltd는 이태원 건물 등 이 씨 모녀의 다른 부동산도 관리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조계사 인근 상인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모친 이 씨는 종로구 저택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자취를 감추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건물 유리창을 보수하고, 담벼락을 채색하는 등 정성스레 관리했다는 것이다. ‘실종’ 보름여 전에도 자신이 꾸민 정원을 둘러봤다는 것이 인근 상인들의 기억이다. 그랬던 이 씨가 갑자기 사라지자 지역 상인들은 모녀의 신변을 우려했다. 그러나 실종신고를 한 사람은 없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실종신고의 경우 타인이 할 수는 없으며 친척 등 관계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종로구 저택 정원에는 1t 트럭을 포함해 중·소형차량 5대가 주차돼 있다. 상인들은 “지방에 내려갔다면 차를 타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으로 돌아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경우는 세입자가 없는 것이 의문이다. 실제 이 씨는 2003년 자동차회사 다임러크라이슬러 국내 법인에 한남동 주택을 임대해주기도 했다. 계약 조건은 월 800만 원이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는 ‘의문의 남성’과 관련한 의혹을 접했다. 모친 이 씨와의 안면으로 종로구 저택을 매입하려 했던 B 씨는 “나를 포함한 미국계 한국인 등이 종로구 저택에 관심을 보였지만 살 수 없었다”며 “건물 관리인(남성)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락처도 모르고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이 씨 모녀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한남동 주택 인근 주민 역시 “어떤 남자가 그 주택을 가끔 드나드는 걸 봤는데 여자(이 씨 모녀)는 본 적 없다”며 “대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주택 안의 모든 방은 불이 켜져 있어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남동 주택의 유리창은 각 창호마다 한지 등이 발려 있어 안을 들여다보기 어렵다.
몇 차례 시도 끝에 4월 중순 자신을 ‘케빈 김’이라고 소개한 남성을 한남동 주택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건물을 임차한 사람이며 가족과 함께 살고, 이 씨와는 이스라엘의 한 선교단체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또 케빈은 “이 씨 모녀가 생존해 있으며 남편과 함께 일본에 거주한다.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앞서 ‘이 씨가 이혼한 것으로 안다’고 했던 불교계 측의 설명과 다르다.
케빈에게 ‘이 씨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니 이 씨와 연결시켜 달라. 체납 등 문제로 수사기관에서도 신변을 궁금해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시 케빈은 “알겠다”며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다. 그러나 케빈은 이후 10여 차례의 전화와 문자를 통한 문의에 답하지 않았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 씨 모녀의 ‘실종’ 및 재산 형성 과정에 의문을 표했다. 이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딸 이 씨는 2014년 3월 이태원동 건물로 전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건물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출국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다.
모친 이 씨 역시 2010년까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간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씨가 부동산 임대 외에 특별한 수입원이 없었다는 점, 외부와 접촉을 꺼렸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업 성공으로 부를 형성하진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일본계 비자금이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