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정치인 P· Y 실명까지 오르락내리락…브로커 이 씨가 핵심 ‘키맨’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이날 압수수색은 최 변호사 사무실을 포함 서울 강남구 네이처리퍼블릭 본사, 관할 세무서 등 총 10곳에서 진행됐다. 지난달 15일 정운호 대표가 최 변호사를 폭행했다는 의혹이 터지고 법조비리로 확전된 지 18일 만이다. 거듭 제기된 의혹에도 그동안 신중을 기하던 검찰도 이제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가 수면위로 부상한 형국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 법원이 이렇게 긴장한 모습은 오랜만이다. 언론이 계속해서 사안을 리드해 나가면서 검찰이나 법원이나 서로 ‘자기 얘기만 안 나왔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의혹이 너무 걷잡을 수 없자 검찰에서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주도권을 잡고 가자는 심산인 듯하다”라고 전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조게이트와 관련 ‘2라운드’가 시작됐다”는 분위기다. 갖가지 의혹이 물밀듯이 제기됐던 사건 초반과 달리 이제 어느 정도 장막이 걷혔다는 것이다. 관건은 이제 ‘핵심 키맨’ 몇 명에게 압축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 안팎에는 정 대표, 최 변호사, 핵심 브로커 이 아무개 씨, 검사장 출신 홍 아무개 변호사 등 ‘핵심 4인’을 어떻게 조사하느냐에 따라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키맨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건 당사자 최 변호사는 잠행을 이어감으로써 갖가지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최 변호사 측은 정 대표와 관련한 여러 증거들을 폭로하며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사안이 ‘50억 원 수임료 파문’과 ‘법조게이트’ 의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일요신문>은 최 변호사 측과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지난 4일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지만 “언론 접촉은 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최 변호사에게 법조게이트 관련 소명을 요구한 서울시변호사협회 측도 6일 “최 변호사에게 어떠한 입장도 듣지 못한 상태다. 이상할 정도로 너무 잠잠하다. 우선 오는 13일까지는 기다려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최 변호사의 잠행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가 법조계에 퍼지고 있다. 최 변호사를 잘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건 초반 언론 접촉을 주도했던 이는 최 변호사 당사자가 아니라 최 변호사의 사실혼 남편으로 알려진 이 아무개 씨다. 최 변호사를 대리해 경찰에 ‘폭행 고소장’도 접수했다. 하지만 이 씨 역시 더 이상 사건을 알려봤자 좋을 게 없다고 느낀 것 같다. 그만큼 불리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 씨 역시도 상당한 의혹들을 갖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씨는 최 변호사가 변호를 맡은 이숨투자자문(이숨)의 ‘실세 이사’다. 최 변호사는 이 씨의 소개로 지난해 이숨 송 아무개 대표의 변호를 맡게 됐다. 이때 송 대표 측이 최 변호사에게 건넨 수임료가 ‘수십억 원’에 달한다는 전언도 있다. 최 변호사가 ‘억대 수임료’를 받게 된 계기는 사실상 이때부터라는 얘기가 법조계에 파다하다.
거액 수임료를 받게 된 만큼 최 변호사는 법조계 인맥을 접촉하며 청탁을 한 정황이 여럿 포착된다. 이숨 사건의 경우 항소심 재판 부장판사가 최 변호사와 같은 지역 출신으로 근무지도 여러 번 겹쳤기에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정운호 대표 항소심이 진행된 지난 1월경에는 최 변호사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찾아가 심 아무개 부장검사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와 심 검사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 자리에서 최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가 기부도 많이 했으니 구형량을 낮춰줄 수 있겠냐”며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심 검사는 1월말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겨 최 변호사의 뜻대로 되진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최 변호사가 누구누구를 접촉했는지는 정 대표와의 대화와 그녀의 다이어리에만 남아 있다. 검찰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접견할 때마다 스프링철 형태의 ‘대학노트’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바로 이 대학노트에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8인 로비 리스트’도 적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즉 대학노트가 법조로비의 치부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현재 이 노트를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안은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최 변호사가 이미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인멸했다는 정황도 있다. 지난 3일 압수수색 당시 검찰은 최 변호사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포맷돼 있고 사건 수임 관련 문건들이 몇몇 빠져 있음을 포착했다. 무엇보다 최 변호사가 구치소에서 정 대표와의 대화를 녹음한 ‘보이스펜’도 확보하지 못했다. 최 변호사를 잘 아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 변호사는 보이스펜을 항상 소지하고 다닐 정도로 꼼꼼했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보이스펜 역시 검찰이 확보해야 할 핵심 증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검찰은 우선 최 변호사 측을 상대로 증거인멸 혐의를 적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 대표와 최 변호사가 대화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락 했다는 전언이 있어 주목된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계 쪽에도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표적으로 흘러나오는 인사는 전 국회의원 P 씨, 실세 국회의원 Y 씨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P 씨는 정운호 대표의 핵심 브로커인 이 아무개 씨와도 상당한 연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씨를 잘 아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 씨가 사업을 하면서 P 씨에게 여러 줄을 댔다. 일종의 공생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한때 실세 의원인 P 씨는 이미 정치권에서는 원로로 꼽힌다. 정 대표와 P 씨와 연이 있다면 그 안에 법조브로커 이 씨가 끼어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결국 향후 ‘정운호발 법조게이트’ 2라운드는 핵심 키맨들을 얼마나 어떻게 조사하느냐 여부가 실체를 파악하는 핵심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조계를 넘어 정관계 로비 의혹까지 불거질 경우 사태가 얼마나 커질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정운호 법조게이트는 일종의 ‘톱니바퀴’식으로 관계망이 얽혀 있다. 키맨 중 한 명인 검사장 출신인 홍 아무개 변호사는 핵심 브로커 이 씨와 고교 동문으로 친분이 있다. 특히 이 씨의 여동생이 운영하는 청담동 한식당에서 모임으로 만나 자주 회동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로비 리스트 8인 명단’에도 등장하는 홍 변호사는 굵직한 검찰 특수통 출신으로 정 대표의 검찰 로비를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아직 홍 변호사를 조사하는 데 의지를 보이진 않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도 홍 변호사 쪽은 제외돼 “눈치 보기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의혹이 범죄단서 수준으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브로커 이 씨의 경우 수사선상엔 올렸지만 잠적한 탓에 수사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만약 브로커 이 씨가 정재계, 홍 변호사가 검찰 쪽, 최 변호사가 법원 쪽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지금의 정운호 의혹은 아직 10% 정도 드러났다는 얘기가 있다. 지금부터가 사실상 시작이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