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지난달 22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최 아무개 변호사 폭행 혐의로 피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정운호 게이트’로 비화됐다. 최 변호사와 브로커 이 아무개 씨, 검사장 출신 H 변호사 등이 정 대표 구명을 위해 현직 판사와 검사에게 전방위 로비를 펼쳤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 관계자들은 현재 대부분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사건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법원이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현직 부장판사가 브로커와 직접 어울렸다는 사실이 드러나 이미 대국민 신뢰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그나마 검찰 수사가 그동안 언론이 제기한 여러 의혹들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마무리되면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은 이 사건에 개입한 현직 판사의 명단이 추가로 나오거나, 알려진 것보다 더 깊이 사건에 개입한 정황 등이 밝혀지는 것이다. 법원이 검찰 수사를 복잡한 심정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최 변호사, 정 대표 고소는 ‘자충수’
이 사건이 불거진 후 법조계 안팎에선 최 변호사 측이 왜 사건을 이렇게까지 키웠는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정운호 게이트로 사건이 확대되면서 결국 최 변호사 자신이 이 사건에 발목이 잡힌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 변호사를 대신해 정 대표를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한 이숨투자의 이 아무개 이사가 고소장에서 자신을 최 변호사의 ‘사실혼 남편’이라고 밝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 변호사의 사생활까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 한 인사는 “정 대표가 여성인 최 변호사를 구치소 접견 당시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최 변호사 쪽으로 기울었었다”며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 대표 고소는 20억 원 수임료 공방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압박용’ 카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인사의 분석대로라면 사실 정 대표 고소는 최 변호사 입장에선 ‘자충수’였다. 정 대표는 진정서에서 “최 변호사는 선납받은 20억 원 수임료가 상습도박 혐의뿐만 아니라 정 대표의 민·형사 사건 일체에 대한 선임료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상습도박 혐의에 대한 보석 허가 관련 사안과 서울구치소에서 징벌처분이 내려진 데 대한 탄원서 작성 이외의 사건을 수행한 바 없다”고 밝혔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이 진흙탕 싸움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법조계 내에선 20억 원 수임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판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같은 변호사인데 누구는 전관이라고 20억 원이나 수임하고 누구는 전관이 아니라서 몇 백만 원밖에 받지 못한다는 게 이 사건으로 입증이 됐는데 문제가 안 되겠느냐”며 “두 사람이 고소와 진정서로 맞선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은 법조를 좀 안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20억 원의 진실에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에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검찰 출신의 다른 중견 변호사는 “양측이 하도 어처구니없는 수를 두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둘 다 감정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왔었다”며 “그러다 최 변호사의 폭로전이 잇따라 나오는 등 황당한 상황이 계속 벌어지다보니깐 혹시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 수사 속전속결 진행하는 검찰에 불안한 법원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다음날 검찰이 동시다발 압수수색에 나간 것은 수사를 속전속결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전방위 법조로비 의혹의 핵심인 브로커 이 아무개 씨가 아직 검거되지 않은 데다, 사건 관계자들의 증거인멸 우려 등으로 인해 시간을 끌 이유가 없기도 했다.
법원에선 임 아무개·김 아무개 부장판사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검찰에선 지난해 정 대표 해외 원정도박사건을 수사했던 심 아무개 부장검사에 이름이 언론에 거론됐다. 검찰에선 특히 심 부장검사 외에 또 다른 부장검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직 부장판사와 부장검사의 이름이 나오자 법원과 검찰은 이 사건 초기에 내부적으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그 결과 법원은 두 사람 외에 다른 판사의 이 사건 개입은 없다고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도 일부 부장검사에 대한 의혹은 언론 차원에서 제기된 것일 뿐 전혀 문제가 될 상황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적극적인 것도 이런 내부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법원은 이런 검찰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법원으로선 검찰이 상식선에서 이번 수사를 진행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필요 이상으로 사건을 키운다거나, 법원만을 집중 타깃으로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특히 법원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최 변호사의 ‘입’이다. 최 변호사가 평소 워낙 법원 관계자들에게 잘해왔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그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누구의 이름을 입에 올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검찰 입장에서야 기존에 나온 현직 부장판사 명단 외에 추가로 비중 있는 현직 판사들이 나와 주기를 바랄 수 있다”며 “검찰 권력보다 사법 권력이 강한 것을 평소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검찰이 이번에 단단히 벼르는 게 무리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로 검찰 관계자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브로커 이 씨의 존재는 검찰에도 부담이다. 그가 검사장 출신 H 변호사와 자주 만났고, 그 자리에 현직 검사들도 동석했다는 얘기가 이 사건 발생 이후 법조계 안팎에선 자주 들리고 있다. 검찰이 이 씨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그의 입단속을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문제는 이 씨를 검거하고 최 변호사를 불러서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된 것들을 검찰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에 달려 있다”며 “사건이 너무 커지면 검찰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탓에 아마도 수위 조절을 할 것이고, 그러면 법원이 바라는 대로 적정한 수준에서 수사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훈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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